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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규 교수는 찰스 피니에 대한 부분을 수정해야 한다

기사승인 2018.05.05  23: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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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규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 교회사)

박용규 교수(총신신대원 교회사)는 한국교회에서 세계의 부흥운동에 관하여 가장 광범위하게 연구하신 분이다. 그런데 최근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에 의해 박용규 교수의 신학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박용규 교수가 이반 로버츠가 일으킨 웨일즈 부증, 윌리엄 세이모어가 일어킨 아주사 부흥과 오순절 부흥, 그리고 그 이전의 찰스 피니가 일으킨 부흥 등을 거룩한 성령의 부흥으로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찰스 피니는 아담의 원죄, 그리스도의 대속죽음, 믿음으로 얻는 의의 전가, 전적타락, 무조건적 선택, 변질된 자유의지 등의 성경과 개혁주의 신앙의 근본을 파괴하는 심각한 이단이었다. 찰스 피니에 대해서는 개혁주의 진영뿐 아니라 일반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기독교의 근본을 허무는 펠라기우스주의를 퍼뜨린 이단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박용규 교수는 심각한 이단자가 일으킨 거짓 부흥을 거룩한 성령의 부흥이라고 극찬하였다. 박용규 교수는 찰스 피니의 부흥을 성령의 부흥으로 기술하는 과정에서 찰스 피니가 초창기에 경험한 특이한 체험이 놀라운 성령세례였다고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찰스 피니는 29세 때 강력한 회심을 경험했다. 뉴욕 애덤스에 있는 벤저민 라이트 변호사 사무실에서 실습훈련을 받던 피니는 1821년 10월 10일 화요일 마을 북쪽의 숲속에서 정오가 지날 때까지 기도하던 중 그의 생애에 ‘가장 깊은 영적인 환희’를 경험했다. 이 성령 체험은 단순히 환상이 아니라 성령의 실제적 현시였다.”(박용규 교수)

박용규 교수의 또 다른 글에는 같은 내용이 이렇게 기술되어 있었다.

“1818년부터 사모소에서 일어던 찰스 피니는 3년 후인 1821년 10월 10일 화요일 마을 북쪽에 위치한 숲 속에 들어가 정오를 넘길 때까지 기도하던 중 그의 생애의 ‘가장 깊은 영적인 환희’를 경험했다. 그날 퇴근 후 그곳을 다시 찾은 피니는 기도 중에 놀라운 체험을 했는데, 그는 이것이 ‘환상이 아니라 육체적(실재적) 현시’였다고 믿었다. ‘나는 강한 성령세례를 받았다 ... 전혀 예상치도 않았는데, 그런 일이 내게 일어 나리라도는 꿈에도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느 누구한테서 그런 일에 대해 들은 기억이 없는데 ...(찰스 피니)’”(박용규 교수)

박용규 교수의 두 글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찰스 피니는 1821년 10월 10일 특별한 성령체험을 했다. 피니는 그것을 ‘가장 깊은 영적인 환희’라는 소개하였다. 또한 피니는 그 일을 ‘성령의 육체적(실재적) 현시’라고 소개했다.

문제는 박용규 교수가 찰스 피니가 ‘성령의 육체적(실재적) 현시’라고 말하는 그 내용에 대해 전혀 신학적인 검증이나 비판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용규 교수가 피니의 ‘성령의 육체적(실재적) 현시’라고 말하는 체험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찰스 피니가 ‘성령의 육체적(실재적) 현시’라고 말하는 내용은 과연 신학적으로 타당할까? 대체 피니가 경험한 성령의 육체적(실재적) 현시란 무엇일까? 성령이 자신의 모습이나 자신의 존재를 직접 인간에게 직접 드러내신다는 의미인 것 같다. 아니면 성령이 직접 한 개인에게 구체적인 말씀계시를 주신다는 의미인 모양이다. 이런 뜻이 아니면, 과연 무슨 의미로 성령의 육체적(실재적) 현시라는 말을 사용하였을까?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그러나 성령은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성령은 자신의 모습이나 자기의 존재를 홍보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성령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선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성령이 하시는 일을 이렇게 설명하시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심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

성령은 자신의 나라를 구하지 않고,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진리의 말씀 속으로 인도하신다.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요 16:13)

성령은 자신의 말을 전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배우고 깨닫게 하시는 분이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요 16:14)

성령은 자기의 영광이나 화려함을 구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 받으시게 하신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이다.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요 16:15)

성령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영역과 권위를 세우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신 일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이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백성이 되는 길을 알려주시는 분이다.
 

신약의 성령은 오직 오직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일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속을 적용하여 주시는 분이시므로 성경은 성령을 '예수의 영'이라고 표현하고, 심지어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가 동일한 분이라고도 표현한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리”(행 3:19.20)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행 16:6,7)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행 5:8,9)
 

그러므로 정말 찰스 피니가 1821년 10월 10일에 경험한 영적인 일이 전정한 성령세례였다면, 마땅히 그 모습과 결과는 온통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했다. 찰스 피니의 생애에서 ‘가장 깊은 영적인 환희’라고 불리우는 그 일의 시작과 중간과 결과는 모두 찰스 피니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깨닫는 것이어야 했다. 결코 기독교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성령이 존재하지 않는다.

   
 박영돈 교수(고려신학대학 대학원, 조직신학)

이 점에 대해서는 고신의 박영돈 교수가 매우 잘 설명하셨다. 박영돈 교수는 자신의 모습이나 영광을 과시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시는 성령의 성품을 '성령의 수줍음'이라고 표현하였다.

“성령의 얼굴에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거룩한 수줍음’이라고 할 수 있다.”(박영돈,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57 페이지)

기독교의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66권의 말씀을 자신의 사역의 수단과 목적으로 삼으신다. 성령은 결코 자신의 별도의 얼굴을 가지지 않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곧 성령의 얼굴이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증거이다. 그래서 개혁신학의 성령론은 하나님의 말씀에 메이지 않고 제 멋대로 구는 성령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영은 성령의 이름을 도용하는 ‘귀신’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외에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성령의 정체는 속이며 거짓을 가르치는 영이다.
 

찰스 피니가 경험한 신비주의

과연 1821년 10월 10일 찰스 피니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날 찰스 피니에게는 두 번의 놀라운 영적인 체험이 있었다. 먼저 찰스 피니는 벌건 대낮에 숲에서 혼자 기도하다가 자기의 인생에서 ‘가장 깊은 영적인 환희’를 경험했다. 그리고 밤에 또 다시 2부가 이어졌다. 다음은 찰스 피니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날 밤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 즉 2차로 벌어진 일들에 대해 기록한 내용이다.

“내 영혼의 흥기(興起)가 너무 고조되어 나는 다시 앞 사무실의 뒷방으로 기도하러 달려갔다. 이 방에는 불도 등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내게 아주 환한 것 같아 보였다. 그곳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을 때 나는 마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만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살아있는 어떤 사람을 보는 것과 똑같았다.

그분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으셨지만 나를 자기 발 앞에 거꾸러뜨릴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보시는 것이었다. 그분이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이 생생한 현실인 것 같았고 나는 그분 발 앞에 엎드려서 그분께 내 영혼을 쏟아 놓았다. 나는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울었고 비록 흐느끼는 음성으로나마 할 수 있는 대로 죄를 자백했다. 그런데도 내가 그분에게 감명을 주었다는 인상은 전혀 받지 못했다.

이런 상태로 상당히 오랫동안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상면에 너무나 깊이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윽고 내 마음이 차분해져서 나는 뒷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커다란 마루에 지펴 놓았던 불이 거의 꺼져 가고 있었다.

내가 불가의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나는 강한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그것은 전혀 예측치 못했던 것이었고 그런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으며, 누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본적도 없었을 때에 성령은 나의 몸과 영혼을 꿰뚫고 지나시는 것처럼 나에게 임하셨다. 그것은 마치 전류와도 같이 내게 흘러오고 또 흘러오는 것이었다.(찰스 피니의 자서전)

   

“나는 곧 잠이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넘쳐흘러 바로 잠이 깼다. 나는 충만한 사랑으로 인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잠시 후 다시 잠이 들었는데 얼마안가서 또 잠이 깼다. 깨어났을 때는 이 시험이 내게 다시 찾아 왔다. 그리고는 내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 식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잠들기만 하면 내 마음 속이 너무나 따뜻해서 나는 즉각 다시 깨어나곤 했다. 밤늦게까지 이런 식으로 되풀이 하다가 드디어 약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밝은 햇살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 햇살이 내게 준 인상은 형용할 수가 없었다. 지난밤에 받았던 것과 꼭 같은 세례가 즉시 또 내게 임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고 기쁨으로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그리고는 성령의 세례에 압도되어 잠시 하나님께 내 영혼을 쏟아 놓았다.

이 날 아침의 세례는 부드러운 책망을 수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성령께서는 내게 “네가 의심하겠느냐? 의심하겠느냐?”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울부짖었다. ‘아닙니다.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의심 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그 문제를 너무나 말끔히 해결해 주셨고 그래서 사실상 성령께서 내 영혼을 사로잡으셨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했다.”(찰스 피니의 자서전)
 

찰스 피니가 자신의 자서전에다 직접 기술한 신비체험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찰스 피니에게 성령이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2) 이미 성도였던 찰스 피니에게 추가적인 성령의 불셰례가 임했다.
3) 밤에 성령의 불세례를 받았는데, 다음 날 아침에 또 불세례가 또 임했다. 
4) 찰스 피니에게 임한 성령세례는 마치 전류의 흐름과 같았다. 

찰스 피니에게서 일어난 이런 일을 신비주의라고 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비주의는 그냥 신비한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 실제로 신비한 일을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성경의 말씀으로 설명되지 않을 때, 그 일이 신비주의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사탄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적 기독교에서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적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 성경 66권뿐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66권 안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알려주시고 가르쳐 주신다. 이 외에 다를 방식으로 체험하는 모든 영적인 현상들은 신비주의, 곧 사탄주의이다.

찰스 피니는 원죄를 부정했던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으심에 대한 신앙을 거부했던 사람이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전가의 신앙을 거부했던 사람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뼈대인데, 펠라기우스가 이것을 허물었으므로 어거스틴에게서 강력하게 신학적인 반박을 받았다. 결국 418년 카르타고 회의는 어거스틴의 신학을 정통신학으로 인정하고 펠라기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찰스 피니는 현대판 펠라기우스이다.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들 대부분이 찰스 피니를 현대판 펠라기안(Pelagian)으로 규정한다. 절대로 성령은 이단과 함께 일하시는 분이 아니다. 찰스 피니에게서 일어난 신비한 일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었다. 웨일즈 부흥을 일으킨 이반 로버츠에게 수 없이 나타났던 환상들도 성령의 역사가 아니었다. 찰스 피니나 이반 로버츠, 윌리엄 세이모어를 통해 일어난 부흥이 성령의 부흥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고, 진리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용규 교수는 이런 이단들이 일으킨 부흥을 모조리 위대한 성령의 부흥으로 왜곡하였다. 박용규 교수가 저지른 일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심각한 이적행위이다. 왜냐하면 사탄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미화하였기 때문이다.

박용규 교수에게서 이런 위험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그가 개혁신학으로 무장되지 못한 현대 복음주의 신학자이기 때문이다. 만일 박용규 교수가 목사 안수를 받을 때 서약했던 내용, 즉 “웨스트민스터 신약고백서를 성경에 준하는 가르침으로 알고 성실히 따르고 준수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한 신앙고백을 따르고 있다면, 절대로 찰스 피니가 저 따위 체험을 하고서 ‘성령의 욱체적(실재적) 현시’라고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여러 시대에 여러 방식들로 자신을 계시(啓示)하시고 그의 교회에게 그의 뜻을 선언하기를 기뻐하셨고, 후에는 그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시기 위해, 또 육신의 죄성과 사탄과 세상의 악의(惡意)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굳게 세우시고 위로하시기 위해 그 계시하신 내용을 온전하게 기록되게 하셨다.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이 지금 중지되었기 때문이다.”(웨민신고 1-1)

성령의 육체적(실재적) 현시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장로교 신앙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준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웨.민.신.고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계시하실 때 사용했던 성령의 육제적 현시, 꿈, 환상 등의 방법이 성경 66권으로 종결되었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용규 교수는 웨일즈 부흥을 일으킨 이반 로버츠가 수 없이 환상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영적인 정체를 의심하기를 거부했다. 박용규 교수에게 신학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정이철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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