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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 박사, 영성 개념은 천주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기사승인 2018.05.31  12: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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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구 교수(합동신대학대학원 대학교 조직신학)


1-2. 그러면 기독교와 관련된 이들이 말하는 “영성”만을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이들이 말하는 영성이라는 것을 다 제쳐 놓고,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복음주의권에서, 그리고 이 자리에서 우리가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방식과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용어가 사용된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면 이것도 그렇게 단순히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영성”을 말하는 이들이 대개 이전 천주교 영성 사상가들이 말하던 바를 토대로 하고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영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들이 이 단어에 부여한 의미를 배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천주교의 예수회(Jesuits)의 창시자인 이그나티우스 료욜라(Ignatius Loyola, 1491-1556)1)적인 의미의 “영성”을 생각하고, 특히 “영성을 위한 수련”과 같은 것을 말할 때 그가 말한 “영신 수련”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특히 오늘 날 많이 유행하고 있는 영성 자료 같은 것은 결국 모두 그의 사상과 그로부터 발전한 것들을 제시하고 있는 현실을 보라.

서강 대학교 영성 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이그나티우스 료욜라와 그로부터 기원하는 영성 훈련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 하고 있다:

“초기에는 매우 단순한 형대로 지도했지만, 시간의 흐르면서 좀더 섬세한 모습으로 이 <원리와 기초>가 제시되었다. <영신수련>을 받고자 하는 지원자의 마음가짐을 오랜 기간 동안 준비시킨 후에, 이냐시오는 피정자에게 <원리와 기초>의 내용을 설명해 주었고, 동시에 여러 성찰 방법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 날 오후부터 죄 묵상에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리와 기초>는 두 가지의 역할을 수행한다. <영신수련>을 체험하기를 원하면서 오랜 기간 마음 자세를 준비해 온 피정자로 하여금 이 피정을 시작하면서 구원에 대한 통괄적이고 객관적인 지평을 상기하도록 이끌어 준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이상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창조와 구원의 역사 안에 펼쳐진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상기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이제 시작하는 <영신수련>의 여정을 위해 마음을 준비시키고, 동시에 이 여정의 첫 발을 내딛도록 이끌어 준다.

하지만 <영신수련>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감에 따라서,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영신수련>을 시작했기에 비교적 덜 성공스러운 결과들을 얻게 되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냐시오는 좀 더 충분한 준비 묵상들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원리와 기초> 본문을 세분하여 몇 개의 요점으로 나누어 묵상하도록 제시하는 방법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냐시오는 인간의 창조 목적, 수단들, 어려움 등의 세 개의 요점으로 나누어 이 묵상을 제시했다.

이냐시오의 동지들과 후계자들 역시 때로는 세 가지, 때로는 네 가지의 요점으로 나누어 <원리와 기초>의 내용을 묵상하도록 제시했다. 예를 들어 성 베드로 까니시오(St. Peter Canisius)는 인간의 창조된 목적, 창조물의 목적, 창조물을 사용하는 올바른 자세 등의 세 가지 요점으로 나누었고, 폴랑코(J. Polanco) 신부는 창조와 인간의 목적, 창조물의 목적, 창조물의 사용, 불편심 등의 네 가지로 나누어 제시했다.

물론 <원리와 기초>을 며칠 동안 계속해서 묵상하도록 하는 것은 <영신수련>의 근본 사상에 어긋난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1599년에 공식적으로 출판된 [지침서]는 <영신수련>이 올바로 진행되기 위해서 충분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원리와 기초>의 내용이 몇 개의 요점들로 나누어져 묵상하도록 제시하는 것은 사부 이냐시오의 실천적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재천명했다.

그러므로 <원리와 기초>는 <영신수련>을 시작하는 피정자로 하여금 하느님의 구원적 사랑의 빛에 의해 자신의 삶이 개선되어야 할 필요를 의식하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 하느님 은총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신앙에 성장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준다. 이러한 열망은 <영신수련>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일 피정자가 이미 오랜 준비 기간을 통해 이러한 마음과 열망을 지니고 있으면, <원리와 기초>은 이미 형성된 관대하고 아낌없는 마음으로 자신의 약점과 죄스러움을 의식하게 해주면서 첫째 주간의 묵상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그러므로 피정 지도자는 피정자가 영적 이해력과 성숙에 도움을 주면서, 좋은 피정의 열매를 얻을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시켜야 한다.”
 

천주교회에서는 이런 식의 영성 수련이 일반화 되어 있다. 그래서 심상태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교 영성계에서 전통적으로 ‘수덕적 영성’은 입문 단계인 ‘정화(淨化)의 길’(via purificativa)로부터 시작하여 ‘조명(照明)의 길’(via illuminativa)을 거쳐 ‘일치(一致)의 길’(via unitiva)인 주입적 관상의 단계를 추구하며, ‘신비적 영성’은 초자연 은총의 결과인 주입적 관상과 수동적 정화 및 변형 일치의 영성 생활을 추구한다.

또한 십자가의 성 요한(St. John of the Cross)은 초보 단계에서 숙련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는 어두운 밤이 있기 마련이라고 하면서, 이를 통과하면 그는 이제 새롭고 더 깊은 종류의 기쁨인 “주입된 관상(infused contemplation)의 기쁨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 십자가의 요한은 ”영혼을 사람의 영과 함께 불꽃 가운데 두는 하나님의 은밀하고,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는 주입(infusion)이라고 묘사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어느 단계에로 나아가면 은혜의 주입이 주어지고 그것에 의해 우리를 상승시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천주교회에서의 영성 논의에서는 일반적으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하면서 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스스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半)-펠라기아누스주의(semi-Pelagianism)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훈련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개신교의 영성 훈련도 기본적으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서 응용하고 있다. 비교적 건전한 개신교적 영성 신학을 제시하는 사이몬 챤도 이그나티우스 료욜라의 <영적 훈련들>을 상당 부분 긍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이몬 챤은 비록 복음주의적 시각을 유지하려고 많이 애쓰지만, 천주교의 훈련적(ascetical, 일반적으로 “수덕적”이라고 번역함) 특성을 많이 받아들이고, 은사주의적 강조도 많이 포용하면서 자신의 영성 신학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일정한 복음주의적 틀은 유지하면서도 (구원적 의미에서는 아니지만) 영성 문제에 관한 한 상당히 혼합주의적인 내용을 말하고 이곳저곳의 사상과 기법을 다 용인하는 방법을 지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이몬 챤도 “인도 전통의 요가 훈련과 중국의 태극권 기술에서 보이는) 신체 훈련, 직관적 통찰력과 실제적 지혜와 같은 분야에서 "부정적”(apophatic) 전통과 이시아적 전통들로부터 배울 필요로 강조한 틸더른 에드워즈의 영적 지도 방법에 상당히 찬동하면서 이것이 서구적 합리주의적이고 분석적 접근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영성 운동을 강조하는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개신교에서는 500년 동안 기독교의 좋은 전통인 수도원 운동을 잃었다고 하면서 그 전통을 복원하는 의미에서 영성 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특히 현대 천주교 영성 사상가들로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이나 헨리 나우엔(Henry Nouwen, 1932-1996) 등의 영성 개념과 그들이 말하는 영성 훈련 등이 오늘날 논의의 좋은 토대가 되고 있는 현실을 보라. 물론 천주교회에 속한 이들이나 다른 이들이 영성에 대해서 말할 때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성서적 영성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각 교계가 일치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성서적 영성이라는 의미가 각기 다르다고 하는 것에 우리는 특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특히 영성이나 영성에 관련된 말을 할 때는 천주교에서 온 것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조금 응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천주교적인 것이 오늘날 개신교 영성 훈련에 영향을 미친 것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뜨레스 디아스”(Tres Dias) 같은 것이다. 이는 스페인에서 개발된 천주교 영성 수련 프로그램인 꾸르실료에 근원을 둔 것이다. 이를 활용해서 많은 개신 교회들도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상당히 보수적인 복음주의권의 저자는 자신의 책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안식년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도 한다:

“안식년 동안 적지 않은 곳을 여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안식년의 끝자리를 생소한 여행으로 마무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워싱턴 근교의 한 수도원에서 일주일을 관상 기도로 보냈습니다. 거의 온종일 깊은 침묵 속에서 기도하며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조용한 수도원의 침묵 속에서, 태고의 깊은 고요 속 영혼의 평안을 회복했습니다. 때로는 침묵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만큼 내게 낯선 친구였음을 확인하며 그와 벗됨을 아픔으로 배워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승구 교수의 블로그 / blog.daum.net/wminb/2029323

이승구 wminb@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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