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즈가 1737년 말 타고 숲으로 갔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해 그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의 종교적 체험으로서 신비적인 환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동안 아무도 이것에 대한 신학적인 비판을 시도하지 않았다. 조나단 에드워즈니까 우리 보통 사람들의 신앙의 굴레에서 벗어나 환상으로 예수님을 볼 수도 있었겠지 ... 하는 무지와 무책임한 자세가 우리 한국교회를 지배했다. 어떤 사람의 말처럼, 한국교회에서 에드워즈는 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에드워즈의 그 체험이 정상적인 성령의 조명하심에 의한 말씀과 신앙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비적인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1737년 에드워즈에게 일어난 그 일이 무엇이었는냐에 따라 에드워즈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일 에드워즈가 개인적 종교체험으로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아름다음을 직접 보는 환상을 체험했다면, 그는 심각한 이단성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런 환상은 특별계시 현상에 해당하는 것이고, 특별계시는 성경 66권으로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특별계시를 내포하는 그 어떤 환상이나, 꿈, 음성 등은 성경 66권 이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통신앙의 기초 상식이고 중요한 뼈대이다. 에드워즈라고 해도 이 진리를 돌파하여 자신만의 신앙 체계를 구축할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에드워즈가 그와 같은 위험성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한 여지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의 부흥집회에서 이상한 울음과 웃음, 쓰러짐, 몸의 진동, 몸의 마비, 실신과 입신 등의 현상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고, 비록 훗날 <신앙감정론>을 저술하여 많은 교정을 시도했다고 할지라도 대각성 부흥의 현장을 이끌 때에는 전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일어난 괴상하고 신비적인 현상들을 단순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고 거짓 영들에 의해 벌어진 것들이었다. 만일 에드워즈가 1737년에 경험한 특별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아름다움을 직접 보았던 신비 환상이었다면, 그 모든 일들이 같은 영적인 줄기에서 벌어진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과연 에드워즈에게 일어난 그 일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아름다움을 직접 경험하는 신비적 환상이었을까? 먼저 올라간 기사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신 분들 중에서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가지신 분은 에드워즈가 자서전에서 “I had a view”라고 표현한 것이 꼭 환상을 보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표현을 얼마든지 에드워즈가 신앙의 깊은 깨달음에 도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에드워즈의 그 표현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영어권에서 태어나고 자란 에드워즈 전문 학자일 것이라고 말하며, 영어권의 에드워즈 학자에게 문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추후 Adriaan Neele 교수에게 이 부분에 대해 문의하는 편지를 보내려고 한다. 지금 Neele 교수는 한국에서 합신과 박사과정 협력 프로그램을 위한 MOU 체결 등의 일정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므로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닌 것으로 짐작된다.

에드워즈의 생애와 신앙을 기술한 가장 뛰어난 책들을 기술한 사람은 Ian Murray와 George Marsden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Murray의 책에서는 1737년 에드워즈의 특이한 종교적 체험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영어권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고의 에드워즈 전문가인 Marsden이 에드워즈의 그 체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과연 Marsden은 1737년의 그 사건을 에드워즈가 종교적 체험으로서 환상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기술하였을까? 아니면 성령의 조명으로서 말미암은 말씀을 더욱 더 심원하게 이해하는 은혜를 경험한 것으로 생각하였을까?

Marsden의 책은 에드워즈의 전체 인생을 순차적으로 요약하고 설명하는 형식이다. 에드워즈의 인생에서 1737년의 상황을 설명하는 내용에 그 이야기가 등장했다. Marsden은 1734-35년의 에드워즈의 1차 부흥이 교인들의 우울증과 자살행렬로 이상하게 끝났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해 3월 주일예배 중 갑자기 예배당이 무너진 사건을 설명하면서, 에드워즈의 교회의 분위기가 부흥이 있기 전의 상태로 급속하게 선회하였다는 사실을 기술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음의 문장이 나온다.

“The return of the town's near blindness to spiritual realities contrasted sharply with the overwhelming clear vision of divine beauty that intensified Edwards' own religious experience.”

(부흥이 일어났던 에드워즈의) 도시가 다시 장님과 같은 영적 수준으로 되돌아가 버린 것은 에드워즈에게 종교적 체험을 더욱 더 강화시켜 준 하나님의 아름다움(신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 압도적이고 선명한 환상과 매우 대조되었다.)

“In his "Personal Narrative," provably written about 1740, he described one particularly memorable encounter."

(1740년경에 쓰여진 그의 자서전에서, 에드워즈는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특별한 사건을 설명했다.)

Marsden은 에드워즈의 도시의 분위기가 영적인 장님의 수준으로 다시 떨어졌다고 했는데, 교회라고 하지 않고 마을(도시)라고 말한 것은 그 당시 뉴잉글랜드 상황에서 교회와 교회가 속한 마을은 문화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거의 일치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1737년에 에드워즈가 말 타고 숲으로 가서 뭔가 특이한 종교적 체험을 했다는 사실을 기술하기 직전에 Marsden이 한 말을 살펴보면, 에드워즈에게 일어난 그 일은 신비한 환상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싶다.

이 문구 바로 다음부터 에드워즈가 말타고 숲으로 가서 뭔가를 체험했다는 다음의 내용이 나온다. 다음의 내용은 Marsden의 기록이 아니고 에드워즈 자신이 남긴 내용을 Marsden이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Once, as I rid out into the woods for my health, anno 1737”

(1737년 경 하루는 나의 건강을 위해 말을 타고 숲으로 들어갔었는데)

“and having lit from my horse in retired place, as my manner commonly has been to walk for divine contemplation and prayer; I had a view, that for me was extraordinary, of the glory of the Son of God”

(조용한 곳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평소에 하던 방식대로 묵상과 기도를 위해 걷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나에게 나타나는 특별한 환상을 보았다.)

“The person of Christ appeared ineffably excellent, with an excellency great enough to swallow up all thought and concept.”

(삼위일체의 그리스도의 위격(또는 인성)이 나에게 나타났는데, 그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광경이었고, 인간의 모든 사상과 사고를 초라하게 만드는 참으로 장엄한 모습이었다.)

“about an hour; which kept me, the bigger part of the time, in a flood tears, and weeping aloud.”

(그 환상은 약 한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눈물이 강을 이루는 가운데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에드워즈 자신이 남긴 그의 특이한 체험에 대한 내용을 도입하는 Marsden의 말 속에는 에드워즈가 특이한 종교적 체험을 했다는 것이 매우 분명하게 암시되어 있다. Marsden은 에드워즈가 특이한 환상을 보았다는 것으로 인식하고서 그 사실을 자신의 책에 포함시킨 것이다. 그렇게 보아야 더 자연스럽다.

“the overwhelming clear vision of divine beauty that intensified Edwards' own religious experience”
(에드워즈의 종교적 체험을 더욱 심화시킨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관한 놀랍고 분명한 환상)

Marsden의 이 문구는 에드워즈가 영적인 체험으로서의 환상을 보았음을 전제하고 있는 내용으로 보아야 자연스럽다. 또한 Marsden이 1차 부흥 이후 에드워즈의 교회(도시)가 싸우는 등의 모습으로 부흥 당시의 영적인 분위기를 잃고 신속하게 이전의 세속적인 분위기로 회귀하고 있을 때, 반대로 에드워즈에게 특이한 영적인 체험이 일어났다고 Marsden은 기술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에드워즈는 마치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도 요한이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의 환상을 보았던 것과 유사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장엄하심의 환상을 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에드워즈가 말하는 성자의 신적인 아름다움을 보았다는 것은 무슨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아름다움을 직통의 환상으로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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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