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성경대로 예수 믿는 것 가르치는 지역교회를 찾으십시오.

기사승인 2018.12.03  01:27:42

공유
default_news_ad1
   

우리가 이 땅의 나그네로서 경험하고 소속하는 모든 지역교회들이 항상 완전하고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좀 말하기 곤란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지역교회에는 거짓된 신자, 구원과 무관한 사람들이 끼어있을 수 있습니다. 마귀의 가라지도 끼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마귀의 가라지가 목회자가 되고, 장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지역의 교회의 구성원 중에 구원을 얻는 참 하나님의 백성은 불과 1% 불과하고 나머지 99%가 구원과 무관한 거짓 성도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지역교회는 완전히 타락하여 구원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가 극에 달했을 때, 엘리야가 하나님께 “다른 사람들은 전부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나만 홀로 남아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보기에 그 당시 교회가 얼마나 절망적이고,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에게 고개를 숙여버린 그 상황이 얼마나 참담했으면 “다 마귀에게 넘어가고 나 홀로 남았습니다”라고 했겠습니까? 이것이 이 땅의 보이는 교회의 실상이고 한계입니다.

일제시대의 신사참배하였던 한국교회를 보십시오.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일본의 태양신과 그 아들 천황에게 경배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고 기독교 신앙도 아닙니다. 그 교회들이 회개하지 않고, 그 가증하고 더러운 영을 버리지 않고 해방 후에 그대로 한국의 주류를 이루었으므로 이후 한국교회의 열매가 지금 이 모양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동의되는 부분입니다.

성경은 십자가 달고 있는 건물을 중심으로 모이는 모든 지역교회들이 전부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이고 영혼을 살리는 교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시대의 어떤 나라의 지역교회는 아무도 구원하지 못하는 죽은 교회, 거짓 교회가 되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계 2:9)

예수님이 서머나 교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그 교회는 지극이 어렵고 초라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기에 그 교회를 영적으로 살아있고 부요한 교회였습니다.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예수님이 사데 교회에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매우 좋은 교회이고 살아있는 교회이지만 예수님이 보기에는 이미 죽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므로 언제나 인간적입니다. 인간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고, 이렇게 믿고 싶어 합니다.

“헌금도 드리고, 기도도 하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신앙의 진정성을 지금 의심하는 것인가요? 그런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면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지극히 인간적인 말입니다. 아주 비성경적이고 완전히 바보 같은 말입니다. 다음의 말을 예수님이 누구에게 한 말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2-24)

예수님으로부터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지역교회에서 활동을 잘 한 사람들입니다. 지역 교회에도 나가지 않고, 나가더라도 열심히 나가지 않고, 지역 교회가 요구하는 신앙의 요건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역교회가 가장 칭찬하고 지역교회에서 매우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 한다”라는 판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알지 못 한다’는 말은 주님이 그 사람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지역교회에서 가졌던 믿음이 주님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무관한 믿음을 잘 practice하여 세상의 눈에 보이는 교회에서는 성공을 했으나, 하늘의 하나님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방언기도도 잘하고, 성령세례도 자주 받고, 귀신도 잘 쫓아내고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 14)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말씀일까요? 아무 지역교회에도 안 다니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일까요? 전혀 교회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신앙의 좁은 길, 멸망으로 인도할 크고 넓은 길에 대해 무슨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하니 영원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좁을 길로 가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도 이 세상의 지역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지역교회에 소속하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바른믿음’의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상 그 사회에 개신교 지역교회에 소속한 사람들의 비율이 지금 한국만큼 높은 사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실상은 어떻습니까? 한국의 사회와 한국의 교회 사이에 전혀 성경적인 관계나 성경적인 열매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사도행전을 보면 지역교회의 신자가 증가되면 불신사회가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에게 존경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더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사회에 그런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반대로 9시 밤 뉴스에 사회의 질을 교회가 저하시키고 있다는, 교회가 한국사회의 적폐라는 부끄러운 뉴스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 땅의 보이는 교회들이 예수를 성경에 의거하여 성경대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과 다른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예수와 성령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구원을 받고, 구원의 열매로 변화된 삶이 나타나서 자신의 진실성을 증거할 것입니다. 성경대로의 믿음이 아니니까 그 사람이 구원을 받지도 못하고, 그 사람이 구원의 열매도 맺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대로의 믿음이 아니니까 주님이 그 사람에게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 한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지역교회가 구원의 복음을 전파할까?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땅의 지역교회들 모두가 성경대로 믿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가 너무나도 자명하게 말하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지역교회에 다니면 누구나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지역교회에 다닌다고 절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어떻게 받습니까?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지역교회의 출석이 우리를 구원받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교회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파해야 인간이 구원을 받을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령이 알아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구원하시는 것 아닌가요?”

천만에요. 성령님에게 단독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기능이나 능력은 없습니다.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와 복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이 없는 지역교회에서는 성령의 사역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역교회는 반드시 사도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옛날에 사도들이 했던 기적이나 놀라운 성령의 역사나 은사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사도들에게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게하는 등의 놀라운 이적들과 특별한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던 것은 유대교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의 복음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하고 이질적이었습니다. 신정일치 사회였던 이스라엘서는 유대교에 반하는 교리를 주장하면 돌로 쳐 죽였습니다. 스데반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것을 보십시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믿어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려고 특별한 이적이 나타나고 특별한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구원을 전파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지역교회들이 사도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때처럼 방언을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전하고 기록한 성경 66권을 증거하는 일에 전부를 투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성령이 운행하시는 교회가 되어서 죽은 영혼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지역교회에 대한 잘못된 기준들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믿게 하는 교회가 영혼을 살리는 좋은 교회인 것입니다. 지역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설교하는 목사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이 시대의 사람들이 알아듣고 믿게 만드는 하나님의 중요한 수단입니다. 설교가 영혼을 구원한다는 말이 목사의 지위를 지나치게 높이는 것 같아서 싫으십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의사와 의사의 손에 잡힌 칼이 환자를 살린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병원이 환자를 살린다”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병원에 있는 의사들의 명성이나 실력을 알아보지 말고 병이 찾아오면 아무 병원에 가서 수술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는 못하겠지요? 왜그렇습니까? 병원이 환자를 살리는 것이 맞지만, 사실은 그 병원의 의사와 의사의 전문지식과, 의사의 손에 들려지는 칼이 환자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돌팔이를 고용한 병원에서는 환자가 살기는커녕 살 사람도 죽입니다. 마찬 가집니다. 교회가 죽은 영혼을 살린다는 말은 맞습니다. 교회에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의 설교자가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수단인 복음을 바르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아무나 복음을 증거하고 설명하는 설교자가 될 수 있다면, 매 주일 교인들 가운데 제비뽑아서 아무나 설교하게 해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지역교회의 기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입니다. 지역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설교입니다. 설교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설교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친절입니까? 빰을 때려도 화를 내지 않는 처세술입니까? 만일 어떤 목회자에게 진리의 말씀이 없으면서 그런 성품이 있으면, 그 사람은 가장 악날한 마귀의 종입니다. 설교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이 역사하사하시는 수단이 되는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역교회의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지역교회의 제일 중요한 요소는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고 바르게 가르치는 설교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어리석고 멍청한 신자들은 무엇을 좋아합니까? 목회자에게 무엇을 기대합니까?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을 말하기를 기대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위해 사납기도 하고 맹수 같기도 하는 목회자들 바라는 것이 아니고, 부드러운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신학학과 교리를 중시하여 공부하고 연구하는데 힘쓰는 목회자를 칙칙하다고 싫어합니다.

대신에 기타 메고 노래하고 그럴싸한 멘트를 남발하고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옆 사람에게 말합시다. 당신은 존귀한 사람입니다” ... 이런 소리나 따라하게하는 목회자들을 좋아합니다.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함께 구덩이에 빠질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도대체 우리가 지역교회에서 뭘하면 구원을 받을까요? 지역교회에 다니면서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구원받을까요? 자신과 남을 속이는 가장 무서운 속임수 중 하나가 기도를 중시하고 많이 하는 것입니다. 대체 성경 어디에 기도를 많이 하면 구원받는다는 내용이 있습니까? 구원받기 위해 기도를 많이 하라는 성경의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불신자들에게 기도를 많이하게 함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경우가 성경에 있습니까? 바울이 기도를 전파하여 영혼을 구원했습니까? 베드로가 기도를 전파하여 교회를 세웠습니까? 바울은 어디에 가나 진리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했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두란노서원을 빌려서 매일 진리의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베드로도 어디를 가나 진리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면 사도들과 성경은 어떤 차원에서 기도를 강조했습니까? 이미 진리의 말씀으로 구원받은 신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더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신앙과 삶을 위해 기도에 힘쓰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기도입니다. 기도하여 구원받고, 기도하여 거짓 방언과 같은 은사 얻는 것이 기독교의 기도가 아닙니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저의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시골 집에서 같이 잠을 잤는데, 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를 했습니다. 근데 목사인 아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를 안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신경질이 나셔서 이러시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무슨 목회를 하냐?”

미국에 와서 시차가 안 맞는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서 무슨 기도를 하겠습니까? 제가 아버지에게 그랬어요.

“아버지, 기도를 많이 하는 것보다 말씀을 바르게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버지 나가는 교회 목사는 이단 윤석전에게 빠져서 힌돌산 기도원이라는 곳에 다닌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런 사람에게서 뭘 배우겠어요? 제일 무서운 속임수가 복음을 왜곡하면서 능력을 받겠다고 기도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이단들이 특징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끄럽다! 잔소리 말고 기도 많이 하란말이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수준입니다. 지역교회의 제1의 사명은 사람들을 기도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지역교회의 제 1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구원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목회자가 이단에게 말씀을 배우러 다니면서 능력받겠다고 매일 기도를 많이 하면, 그 양들은 전부 마귀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없고 기도가 많이 있으면 반드시 거짓 영들의 역사가 임합니다. 마당에 말뚝 하나 박아두고 아침, 저녁으로 소원을 빌면 영험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 말뚝에 거짓 신이 붙어서 종교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의 조명을 받지 못하는 대단한 기도는 우리를 마귀의 거짓 세계로 인도할 뿐입니다. 가장 무서운 속임수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예수 믿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예수 믿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구원이 나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옵니다. 성경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기도하고 헌금해도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지역교회를 택하는 가중 중요한 기준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자체건물, 주차장, 접근성 ... 이런 것은 수퍼 마겟 선정하는 기준입니다.

성경대로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보여주는 곳이 어디인지를 봐야 하는데, 대부분의 지역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눈이 감기고 마음이 둔해지고 영혼이 죽었으므로 이것을 압니까? 목사가 좀 착하면 최고라고 하고, 인상이 좋으면 좋다고 하고 ... 많은 신자들이 목회자의 인상을 중시합니다. 저도 지금은 살이 쪄서 인상이 별로인데, 이전에 날씬 할 때 인상 좋다는 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인상이 좋고 살이 안 쪘으면 그 목사가 신자들을 구원시킵니까? 성경대로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목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예수 믿는 원리를 가르치는 건강한 지역교회의 건강한 신자들만 하나님의 영원한 보편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 the holy universal church)의 구성원입니다. 그 사람들만 나중에 천국에서 모이게 됩니다. 나머지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지역교회에 다닌 후에 죽어서 지옥의 형벌로 떨어집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영혼을 거듭나게 만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양육을 받지 못했고, 말씀과 더불어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례를 입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우리 모두가 성경대로 예수 믿는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성경대로 믿는 믿음이 아니면 전혀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정이철 cantoncrc@gmail.com

default_news_ad3
기사 댓글 7
전체보기
  • 안녕하세요 2018-12-05 09:26:38

    교회 존재의 목적을 탁월하게 요약하신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Best of the best!!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 (딤전3:15)신고 | 삭제

    • 기도의 능력 2018-12-04 20:54:31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 5:16)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딤전 2:1)

      딤전 2:1인용 칼빈은 믿음이 있는 자라면 기도에 게으를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통해서“믿음의 참 증거를 내놓게 된다

      어떤 목사가 자신을 말하기를 하루 7시간이상을 기도한다. 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셨다는것이다. 아무튼 눈으로 보는 가시적교회 성장으로 보면 그말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기도시간을 강조하는 것은 종교적 행위에 불과하다 . 정말 기도를 하루 7시간 이상 해서 단한사람의 영혼을 구원할수 있다면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리 해야 할것이다. 한영혼을 구하는 것이 천하보다 귀하다 했는데 그리하지 않으면 가짜일것이다.

      믿음 생활은 삶의전체적인 모습이 기도가 될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기도의 시간인 그리스도인에게 기도시간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모순된거이다.

      칼빈이 말한대로 기도에 게으르지 말아야 할것이다.그리스도인은 기도를 통해서,믿음의 참 증거를 나타난다.딤전 2:1-2 인용. 칼빈은 믿음이 있는 자라면 기도에 게으를 수가 없다고 하였다.

      우리가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은 긴설명 없이 한두마디면 서로 의사 소통이 된다는 것은 알고있다. 특히나 서로가 전문적 용어를 사용하는 특정집단 사회 구성원 끼리는 더욱 그런것이 필요한것이다.더욱더부모님 과의 대화는 단1초에서도 서로를 알고있다. 서로 위로만 필요한것이다.

      하나님과 일대일 의 만남을 기도는 더욱 서로가 통해야 하는것이다. 그이전에 우리의 삶전체가 기도라는것을 전재해야 한다. 다만 예수님이 한적한곳에 가서 기도하실때는 하나님과 만남의 소중한 시간중 가장귀한 시간을 짧지만 온전히 하나님과 함께 했다는 것이다.군중이 밀려들고 먹을거도 주어야하고 병도 고쳐야하고 말씀도 선포해야 하는 시간에 오히려 주님은 매번 한적한 곳에가서 하나님께 기도 했다는 것이다.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2-35)

      어찌보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유일하신 안식과 평화 휴식시간은 하나님의 품에 있는 그시간 기도하는 시간이 아닐가? 라는 것이다. 그시간은 단10분 너무짧은가?그럼 30분? 아무튼 성경에 시간이 안나온다. 기도를 얼마 만큼 한것하고 믿음 또는 능력있는 신자 목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첫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했는다는 것이다. 그 많은 예수님의 사역속에시작과 끝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말씀듣는시간)가 있다는 것이다. 기도를 길게 하였는지 짧았는지는성경의 정황상 짧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길수도 있고 짧을수있지만 기도시간을 가지고 믿음을시험하는 행위는 없애야 할것이다.

      .....

      이글은 정목사님 과 부친의 대화에서 기도에 대하여 생각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지키고 있는 신앙은 존중받아야 할것입니다.

      부친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정목사님이 하고 계신 사역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 9:28-29)신고 | 삭제

      • 김리훈 2018-12-04 15:22:49

        목사님의 글에 전적으로 수긍 합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러나 인간 편에서는 주님 앞에 설때 까지는 구원의 여부를 알수가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 에서는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어 행위로 구원이 완성 된다고 말합니다. 새관점 학파에서는 우리가 예수를 처음 믿을때 개종칭의가 있고 종말시 종말 칭의가 있다고 합니다. 김세윤 박사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칭의를 받있는데 그 칭의가 예수의 재림 때까지 유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칭의는 한번이요 영원한 것입니다. 필자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칭의를 받고 구원을 받았는데, 개인 종말시 심판대 앞에 그 받은바 칭의가 진짜인지 가짜인데, 즉 진위가 판단된 후에 천국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마태복음 7:에 나오는 구원 받았을 것이라고 믿었던 종교가들 처럼). 우리가 그것을 믿는다면 목사님 글에서와 같이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바르게 믿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것을 모르는 것이 이 시대의 비극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신고 | 삭제

        • 이철제 2018-12-04 10:43:11

          구원받은 자의 열매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닮아가는 성화입니다.

          자기성찰 없이 불가능하죠.

          우리 모두는 전적으로 타락한 사람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22절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신고 | 삭제

          • 진실이란 2018-12-03 11:39:55

            노회나 총회에서 지침이 내려오면 자세한 설명없이 그냥 그걸위해 기도하라는 목사님들이 대부분이죠
            그냥 실망에 또 실망에 너무도 분노한적이 많습니다.
            과연 그런분들이 설교할 자격이 있는지 한심할 따름입니다
            이제는 그런 목사님들이 바뀌길 원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목사님들 특징이 하나있지요
            말하기 곤란한 경우 무조건 기도하라입니다
            저는 지옥 가겠지요 제사장인 목사님들을 비판했으니 말입니다신고 | 삭제

            7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전체보기

            default_setImage2

            최신기사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