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 박사(조직신학, 광주 주님의 교회 담임)

정이철 목사의 “에드워즈를 세우고 예수가 손해보게 하는 연구 그만해야 한다”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 기사에서 정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 부흥과 거짓 부흥의 차이

필자는 사도행전의 참 부흥과 이후 역사 속에서 일어난 마귀의 거짓 부흥의 차이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1. 사도행전의 참 부흥에서는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선포하는 이적들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역사 속의 많은 거짓 부흥운동은 대부분 이미 신앙고백하는 사람들 속에서 큰 의미없는 특이한 현상들이 많이 일어난 이상한 축제였다.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령의 더 부어짐'을 경험한다는 무질서한 현상들이 많이 일어났다.

2. 사도행전의 참 부흥에서는 부흥으로 인해 교회가 파괴는 현상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교회가 더욱 더 말씀으로 견고해졌다. 그러나 이후 역사 속의 거짓 부흥에서는 부흥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교회를 파괴하는 특징을 보였다.

3. 사도행전의 참 부흥은 세상에도 거룩한 영향을 미쳐 하나님이 불신자들에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 되게하였다. 그러나 이후 역사 속에서 일어난 거짓 부흥들은 세상의 교육, 정치, 노예제도, 도덕, 범죄, 술집 추방 등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가장 중요한 교회와 하나님에 대한 세상의 경외심을 일으키지 못했다."

정 목사는 사도행전의 참 부흥과 그리고 이후 역사의 거짓 부흥들을 대조하는 구도를 제시했다. 자신이 반대하는 거짓 부흥의 형태와 특징을 비판하기 위해 사도행전의 성령의 역사들을 표준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필자는 사도행전은 부흥의 표준을 제공한다기보다 다음과 같은 ‘교회 세움과 운영의 매뉴얼’을 보여준다고 여긴다.
 

첫째, 사도행전의 성령의 역사는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와 에베소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은 불신자들과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 목사는 역사 속에서 나타난 거짓 부흥은 주로 이미 신앙고백하는 교회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특이한 체험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정 목사는 사도행전 이후에 등장한 많은 거짓 부흥이 신자들에게 각종의 신체적 현상들을 유발하였고, 그러한 무질서와 혼란이 ‘성령을 더 부어주심’의 결과라고 설명했으나, 그것은 신학적으로 오류이고 이단들이 경험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 목사는 이 점을 지적하지 않으면 결국 정통이 허물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세워졌고, 사도들은 교회에 들어오는 거짓 교훈을 배격하고 치리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였다. 그러나 거짓 부흥은 오히려 교회가 파괴되는 특징이 보인다고 정 목사는 지적한다.

종종 신문에 신천지를 홍보하는 대형광고가 나온다. 신천지의 숫자가 엄청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천지가 성장하는 것은 교회 성장사례가 아니고 교회파괴의 사례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진단이다. 거짓 부흥을 경험하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교회와 집단이 성장한다고 주장할 것이나, 전체 교회가 건강해지고 성장하는 것이 진짜 교회의 부흥이고 성장이다. 
 

셋째, 사도행전을 보면 부흥이 일으나자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에게도 선한 영향을 미쳤다. 부흥을 주도한 사도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더 존경받았고 거룩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정 목사는 거짓 부흥도 세상의 교육, 정치, 노예제도, 금주, 술집 추방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정 목사는 에드워즈가 일반 세상 사람들에게서도 존경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공영방송이 제작한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에드워즈로 말미암아 그 후손들까지도 하나님의 복을 넘치도록 받아 교수, 정치인, 발명가, 목사 등의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상이다.

정 목사는 에드워즈의 대각성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단성 시비거리’가 있었다고 강력하게 지적하였다. 그런데 왜 반대로 에드워즈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인물이라고 홍보하는 영상을 함께 게시했을까? 어쩌면 정 목사가 2차 대각성을 성공적으로 주도하여 미국의 사회, 정치, 문화, 교육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찰스 피니를 생각하였을 것 같다. 찰스 피니의 좋은 점들을 엮어 영상을 만들면, 에드워즈 영상 못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어하는것 같다.

“원죄를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대속도 믿지 않았던 이단도 미국의 교회와 사회의 역사를 바꾸는 대부흥을 일으켰고, 이렇게 후세인들에게서 큰 존경을 받는다!”

정 목사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평생 동안 알미니안주의를 대적하여 교회를 보호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는 것은 분명히 인정하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끝까지 조나단 에드워즈의 대각성 속에 거짓 부흥의 요소가 있었다고 주장할 것 같다. 정 목사는 앞선 선배 연구자들이 에드워즈의 최고의 강점인 이신칭의 교리 수호를 먼저 한국 교회에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반대로 이단들이 환호하는 에드워즈의 약점이나 문제점을 미화하거나 쉬쉬하였다는 것을 끈질기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글의 제목을 “에드워즈를 세우고 예수가 손해 보게 하는 ...”라고 한 것 같다.

정 목사의 글은 상당히 도발적이고, 한국 교회에 충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 목사도 자신이 한국 교회가 받는 충격에 의한 반동으로 오는 충격으로 심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못한다. 정 목사의 심정이 예레미야가 아닌 바울의 심정이길 바란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禍)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16)

선지자는 절대 현세에서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한다. 그것이 예수님 이후로 끝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선지자는 죽은 후에나 존경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선지자에게 주어지는 길을 오직 한 가지, 자기 사명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를 조롱하는 사람은 그에게 고난이 더하도록 고난을 제공한다.

이제까지의 부흥운동에는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현상들이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그것을 비판했던 사역자들의 목소리는 선지자적 외침이었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영원히 기억되어도 에드워즈의 문제점을 비판했던 사역자들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시기심으로라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면 기쁘고 또 기뻐하겠다고 선언했다. 에드워즈를 시기하는 사람이든지 좋아하는 사람이든지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협력하고 정진하자. 끊임없이 ‘예수 이름’을 증거하자. 개혁신학, 부흥신학, 모조리 치우고 예수 이름을 전하자.

정이철 목사의 파격적인 주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정 목사 자신을 포함하여 온전한 사람은 없다. 신학자들과 사역자가 자기의 오류에 대한 비판을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나쁘고 부당하다. 오류를 지적하는 비판이 사실이면 반드시 수정해야 하고, 잘못된 비판이면 거기에 대해 또 비판하는 것이 정당하다. 이러한 분위기와 자세는 한국 교회에 유익이 될 것이다.

정 목사가 신학의 대 선배들에게 항변을 하니 당혹스러울 것이다. 필자의 제언은 이제 머지않아 그럴 나이를 넘어설 것이라는 것이다. 정 목사는 자기와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분별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이어갈 후배가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을 정도로 자기 사역에 대해서 절박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 힘든 길을 갈 사역자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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