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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교회는 축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기사승인 2019.01.07  13: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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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전 세계교회에서 매우 드물게 교파적으로 장로교회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주일 예배의 순서에서 축도가 루터나 칼뱅이 행하고 루터교회와 유럽의 개혁교회들이 사용하는 ‘아론의 축도(민 6:24-26)’가 아닌 미국 침례교회와 미국 장로교회의 일부에서 사용하는 ‘바울의 축도(고후 13:13)’가 한국에 들어 온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서 사용했기에 안타깝게 아론의 축도를 사용하면 신자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현상이 생겼다.

그런데 과연 개혁주의 교회에서 아론의 축도가 아닌 바울의 축도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개혁주의 신학적 사고를 해야 할 시기가 되었는데, 이유는 바울의 축도의 본문이 사실상 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한국교회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본문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하였다면 축도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본문에 대해서 연구한 신약학자 김창선 교수는 “바울서신에 나타난 축도의 의미”에서 논하기를 다음과 같다.

“고후 13:13에 나타나고 있는 바울의 축도는 예배의 마지막 순서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구체적인 편지문 가운데 그 마감어로 사용된 것이다. ... (중략) ... 결국 바울은 서신의 끝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언급하면서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생겼던 앙금을 넘어,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는 한 형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편지문 가운데 그 마감어로 사용된 것”을 쉽게 말하면 본문은 사실상 축도가 아니라 편지의 마지막 인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본문에 대해 연구한 신약학자 조석민 교수는 자신이 쓴 “이해와 설교를 위한 고린도후서 주석”에서 논하기를 다음과 같다.

“바울의 인사는 거의 정형화 된 것이었습니다(살전 5:28; 갈 6:18; 고전 16:23; 빌 4:23; 몬 25; 롬 16:20). 오직 성령 안에서만 공동체의 모든 다양한 구성원이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목사의 축도로만 사용되지만 본래 모든 그리스도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문안 인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사는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졌을 때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우러나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상대방을 축복하고 인사를 나누는 일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진심을 담아 성삼위의 이름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이렇게 인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이 파격적이라 볼 수 있지만 성경신학적 논리로 바른 것이고 두명의 신약학자는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주일예배의 순서의 마침인 축도의 본문이 사실상 축도가 아닌 것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즉 본문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인사말이지 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신학적 이해를 가진 루터와 칼뱅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아론의 축도를 사용한 것이고 주후 1526년에 루터교회는 아론의 축도를 공식화하였다.

그런데 낙스와 청교도들은 아론의 축도만이 아니라 바울의 축도를 사용하였고 19세기 복음주의자들에 의해서 교파를 넘어서 대중적인 축도로 된 것은 본문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되어 있는 것이 영향력이 켰고 이러한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은 한국의 주일 예배에 바울의 축도를 전해 준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울의 축도는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아론의 축도와 다르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아니고 아론의 축도가 제사장들에 의해서 행해졌고 회당예배에서 사용한 역사적이고 정통적인 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축도는 분명하게 성례전적 요소이기에 예배에서 예언자적이며 제사장적 기능을 행하고 있는 목사만이 할 수 있기에 바울이 보낸 편지의 마지막 인사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들이 행한 아론의 축도를 알았기에 당시의 중세교회처럼 사제에 의한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틴 루터와 마틴 부처가 행한 것이다.

그리고 예배신학적 관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는 바울의 축도를 할 때에 끝에 가서 목사가 개인적인 말들을 붙여서 하는 것은 성경 본문을 무시하는 위험한 행동인데,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다수가 행하고 있고 여기에 “있을지어다”“축원하옵나이다”라는 표현이 논쟁이 되는데, 본문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인사말이며 신자들을 위해서 이 편지를 쓰며 기도한 것이기에 “빕니다”로 새번역 성경(2002)이 번역한 것은 잘한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교회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마지막 인사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제사장들이 행하고 회당예배에서 행하였고 루터와 칼뱅이 행했고 루터교회와 다수의 개혁교회가 행한 올바른 성례전적 요소인 ‘아론의 축복’으로 주일 예배에서 행할 때에 신자들의 삶이 복이 됨을 알아야 한다. 즉 개혁주의(사실상 칼빈주의)는 철저하게 ‘성경중심’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그동안의 한국의 개혁주의 교회들은 성경적, 신학적 반성을 하고 개혁해 나가야 될 것이다.

김만옥 potentia-de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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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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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일 2019-01-10 11:22:56

    필자의 장로교회가 한국교회의 70%라는 근거는
    무엇인가요?신고 | 삭제

    • 고경태 2019-01-08 15:28:35

      축도, 축복, 강복선언에 대한 글은 예리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축도 benediction에 대한 논의는 먼저 용어 정립부터가 우선하다고 생각합니다.

      축도, 축복, 강복선언 등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데, 행위를 규정할 수 있는 명료한 어휘가 없습니다. 그리고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 규정하는 것도 선행되어야 합니다. 개신교 예전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립한 예배학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으로 마침과 축복 문장으로 마침에서 축복으로 마치는 것을 선호할 것입니다.

      김만옥 목사께서 고후 13:13의 본문이 예배의 축복 용어로 부적합하다고 밝힌 것은 지엽적인 사안으로 거대 사안에 적용시킨 것이라 생각합니다. 민 6:24-16으로 축복해도 무방하겠지만, 그것만이 유효하고 유익하다는 의견은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1) 고린도후서는 단순 편지가 아닙니다. 비록 고린도 교회에 보내어진 몇 개의 편지 중에서 하나이겠지만, 다른 편지와 다른 계시 문장입니다.
      2) 바울 사도는 "주 예수의 은혜가 있을지어다"라는 가장 단순한 문장으로 마감 인사를하기도 했습니다.
      3) 성경 서신서는 단순 서신이 아니라 주의 몸된 교회 성도를 교육과 권징을 목적으로 하는 공적 문서입니다. * 축복 문장을 찌어다 와 축원합니다. 라는 어휘 논쟁은 한국 어법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축복은 기원형식이나 기도형식은 아니라고 봅니다. 두 의미가 발생하지 않는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봅니다. 축복은 목사 개인의 의지나 성향이 아니고, 말씀의 권위에 근거한 사건입니다. 개인의 성향이 나타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후 13:!3의 유익은 삼위일체가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이고, 민 6:24-26의 유익은 직접 계시 과정이 명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두 삼위일체 축복 문장으로 공식 예배 말미에 선언할 수 있다고 봅니다.신고 | 삭제

      • 의문 2019-01-08 11:37:02

        "예배에서 예언자적이며 제사장적 기능을 행하고 있는"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표현입니다. 예배를 구약적, 제사기능의 성격이 있는 위험한 생각이라 여겨 집니다. 예배는 "드리는"것이 아니라 "하는"것이란 말의 의미를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신고 | 삭제

        • 토론 2019-01-08 01:26:39

          미국의 Greenville Theological Seminary 조직신학 교수인 Ryan M. McGraw는 서신서에서 사도들이 구약의 강복선언을 이어받아 여러 가지 강복선언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13장 14절 말씀도 공적예배의 강복선언문으로 사용할 수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도들의 다른 강복선언문도 공적예배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The apostolic benedictions were also a part of the corporate worship in the church, since their epistles were to be read publicly when the congregation of believers gathered together. …. If the epistles were to be read publicly when the congregation was gathered together, then it is clear the apostles intended their benedictions to be pronounced upon and applied to all the congregations in which they were read. The example of the apostles clearly demonstrates that pronouncing a blessing from God upon the worshiping assembly of his people continues to be a part of the ministry of the Word under the new covenant.”신고 | 삭제

          • 유감 2019-01-07 22:11:51

            유럽의 개혁교회 말씀을 하셨는데요 사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유럽의 개혁교회와 그 전통을 이어받은 북미의 개혁교회의 예배모범을 보면, 목사가 예배의 끝에 축도를 할 때, 민수기 6장 24~26절만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 6장 24~26절이나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을 선택해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몸 글에서 마치 유럽의 개혁교회는 예배 끝 순서에 축도를 할 때 목사가 아론의 축복기도문만 사용한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아울러, 유럽의 개혁교회는 예배 시간에 축도를 하는 순서가 두 번 있습니다. 첫번째 순서는 예배 시작부분에 있는데, 이 때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 요한계시록 1장 4~6절 등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순서는 예배 끝부분인데, 이 때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이나 민수기 6장 24~26절 말씀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이런 글을 올려 주시면 유럽의 개혁교회 전통을 잘 모르는 분들은 몸 글이 다 사실인 줄 알고 한국교회 안에서 예배 후에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을 사용하여 축도를 하는 선량한 목회자들을 무식한 목회자라고 판단하게 될 것이고 이런 그릇된 판단이 쌓이고 쌓이면 그것은 먼 미래에 목회자들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하나님의 나라에 큰 해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안들은 다양한 견해와 전통 중에서 본인이 성경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취하여 본인이 목회하는 지역교회에서 그것을 성실하게 적용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것을 보편교회들과 나누고 싶어서 마이크를 잡고 세상에 말을 할 때는 역사적인 사실을 충분히 살피고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인용하면서 온유한 심정으로 주장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떤 것을 모든 교회가 천편일률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개혁교회의 본래 정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실 때는 본인의 견해를 지지하는 글만 인용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견해들을 함께 인용해서 글을 써주시는 것이 독자들에게 공정한 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족으로, 저는 바른믿음에서 어떤 특정인의 신학을 비판하는 글이나 현실의 교회들의 잘못을 비난하는 글보다는 '바른믿음'의 깊고 풍성한 내용을 다양한 측면에서 알려주는 그런 글을 많이 올려주신다면 대단히 유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모두 수고가 많으십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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