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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목사, 언약이해와 그리스도 인의 삶

기사승인 2019.03.05  22: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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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언약은 창세기 6:18에서 노아와 맺은 언약에 최초로 등장한다. 개혁파는 창세기 1장에서 무죄 상태인 아담에게 주신 명령을 언약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노아 언약이 새로운 생활 체계를 이루는 구조이다.

아담 언약은 첫 언약이고 실패한 언약이다. 실패한 이유는 아담의 범죄이다. 이 때 죄의 개념을 확립할 수 있다. 죄는 언약을 깨드리는 것인데, 언약을 깨는 것은 반역이다. 범법은 언약이 유지되지만 반역은 언약을 깨는 것이다. 그래서 반역을 범하면 반역자는 그 땅에서 살 수 없이 3족을 멸하는 것이 왕권의 위계이다.

첫 상태에서 죄는 정녕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창 2:17). 아담은 반역했고 하나님은 반역한 아담을 즉결 처분하지 않으시고 여자의 후손으로 회복 방안을 선언하셨다(창 3:15).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주셨다(창 3:21) 첫 언약(행위언약)이 깨짐은 새 언약을 부름이고 은혜언약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언약과 구속 이해에서 창조와 구속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창조주의 창조는 은혜로 구속받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은혜가 없는 사람에게 창조 세계는 탐욕의 근거이고 대상일 뿐이다. 당연히 신(神)을 만들어 자기 목적에 부합하도록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불안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보호하는 체제를 정비했다(창4:17).

아담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들과 혼합하면서 특이한 현상들이 나타났다(창 6:4). ‘영웅’의 조건은 사람을 많이 죽이는 것에 있다. ‘스타’의 조건은 상대방을 무력화시켜야 하는 조건이다. 상대방을 정복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은 비정상적인 인간 의식이다. 그러나 죄가 관영해지면 타인을 지배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하고, 타인에게 지배받는다고 생각해도 잠을 자지 못한다. 우리말로는 '억울(抑鬱)'이고, 서양말로는 '부당(不當, unjust)'이다. 영웅에게 없는 것이다. 칼빈은 영웅은 침대에서 혼자 있을 때 공포에 떤다고 제시했다. 성경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다(시 127:1-2).

심각한 범죄를 범함으로 여호와께서 노아를 세워 창조를 재정비하셨다. 창 6:18에 등장한 언약이다. 그것을 ‘노아 언약’이라고 한다. 우리는 노아 언약 아래에 살고 있다. 4계절이 있고, 육식을 하는 공간과 생활 구조이다. 노아 이전에는 인간 수명이 900년이 넘었고 4계절이 없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노아의 후손(셈, 함, 야벳)이 시날 땅에서 범죄하여 언어가 혼잡하게 되었다(창 11장). 다양한 언어는 있는데 현재 7,102개의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방언(方言, 지역 언어)까지 합하면 12,000개가 된다고 한다. 다양한 언어는 게으른 자에게는 안주라는 선물을 부지런한 자에게는 지혜와 기회가 선물로 주어졌다. 바벨 사건으로 노아 시대는 다시 혼잡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부르셨고(창 12장),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다(창 17장).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이삭과 야곱 그리고 12아들과 맺은 언약이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12아들의 언약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400년 뒤에 언약의 땅(약속의 땅)에서 야곱의 자녀들이 거주하게 되는 것이 중간 성취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독생자의 죽음 방식으로 언약이 성취됨을 보았다(창 22장).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하나님의 제사장과 인류의 통치자에게 모리아에서 죽임을 당하셔서 속죄를 이루셔야 했다. 칼빈은 야곱의 12아들의 면면을 보아서 약속의 족장이 될 수 없음을 제시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역사임을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백하도록 했다. 모세는 자기 조상들의 범죄를 그대로 밝힘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책임지시고 이루시는 신실한 주님임을 밝혔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12아들이 애굽으로 70명이 내려갔는데, 430년에 200백만 명으로 증가했다. 애굽의 왕조가 바뀌어서 신의를 깨고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산하억제를 넘어 폭력으로 제거정책을 펼쳤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했지만 그들을 이끌 지도자가 없었다. 모세가 자천했지만 백성들이 배신했다. 모세는 애굽을 피해 40년을 광야에서 유랑했다. 80세인 모세를 여호와께서 부르셨고, 모세는 40년 동안 백성에게 삐짐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있었다. 여호와의 강권하심으로 모세는 애굽으로 내려갔고, 모세와 아론으로 지도로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했다(출 20장).

이 언약을 시내산 언약이라고 하고, 40년 뒤에 모압 평지에서 체결한 언약을 모압 언약이라고 한다(신 5장). 시내산 언약과 모압 언약의 큰 차이점은 돌판의 취합에 있다고 본다. 시내산 언약에서는 돌판을 언약궤에 담은 것이고, 모압 언약은 돌판이 언약궤에 있는 상태에서 재확인한 것이다. 모세 언약을 율법으로만 보는 것은 미숙한 것이다. 율법 제도(출 20-40장)와 함께 성막을 제조하고(출 34-40장), 제사 제도가 진행되었다(레위기). 제사 제도에서 제사를 수행할 제사장 세움과 복장에 대해서 그리고 사역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설명했다. 제사장은 제사를 드릴 뿐만 아니라 율법을 바르게 교육할 의무가 있다.

40년의 광야 생활 뒤에 여호수아의 지도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모세가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지 못했던 것처럼,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넜지만 약속의 땅 전체를 회복하지 못했다. 12지파에게 약속된 분깃을 줌으로 여호수아의 임무는 종결되었다(수 12-21장). 그리고 지파들은 약속된 분깃을 취하지 못하고 가나안 족속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단 지파는 분깃을 하나도 획득하지 못하고 약속의 땅에서 이탈해버렸다(삿 18장). 그러한 상황에서 지파들은 베냐민 지파의 범죄로 동맹을 맺어 베냐민 지파 멸족에 나서는 결정을 했다(삿 20-21장).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왕’이 없기 때문에 그러했다고 평가했다(삿 21:25). 왕을 구하지만 그 일을 해결할 권위자가 없었다.

당시 제사장 겸 선지자였던 엘리(Eli, 삼상 1:9)가 우둔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제사장의 아들(한나의 아들) 사무엘을 통해서 베냐민 지파에서 사울을 지목해서 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사울의 패역으로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사무엘은 생을 마감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그리고 예루살렘 다윗의 성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언약의 땅을 성취했고, 더 많은 땅을 정복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동서남북을 아브라함, 유다의 후손 다윗이 성취했다. 그 성취 과정에서 다윗은 자기 부하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취하기도 했다. 다윗이 취한 땅과 전리품으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다. 다윗의 언약이다.

스데반은 인간이 만든 성전에 하나님이 거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행 7:48). 다윗과 솔로몬의 언약에 근거해서 회개가 아닌 기름진 제물로 제사를 드리며 안정과 번영을 구했기 때문이다. 성전은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인데, 백성의 회개의 제사가 기름이지, 짐승의 기름으로 불을 밝히면 안 된다. 그리고 가난한 자의 고혈을 착취하며 기름진 제물을 드리며 평안하다 평안하다는 거짓 선지자의 주문에 배부른 상태였다.

북이스라엘(주전 722년)은 앗수르에게 남유다(주전 587년)는 바벨론에게 멸망되었고, 남유다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70년 뒤에 바사(페르시아) 고레스(Cyrus, 키루스 2세)의 포고(Cyrus Cylinder)로 귀환했다. 귀환해서 유다 지파 스룹바벨의 지도로 성전을 건축했고, 느헤미야의 지도로 성벽을 건축했다. 느헤미야는 바사로 귀환했고, 말라기는 백성들에게 언약에 충실하도록 촉구했다. 다니엘은 주의 오심을 기다리도록 권면했다.

유다 멸망 전 마지막 선지자인 예레미야는 새언약의 시대에는 율법을 마음에 새길 것을 예언했다(렘 31장).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 보좌에서 나온 물이 넘치게 차는 수준으로 충만한 은혜를 제시했다(겔 40-48장). 마른뼈가 살아나는 환상 뒤에 나오는 모습이다(겔 37장).

이러한 일은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셔서 나사렛 사람으로 활동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지만 천대받는 나사렛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천대의 땅 갈릴리에서 사역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예루살렘, 모리아에서 제사장과 로마 황제의 재판을 받아 죽으셨습니다. 그 흘리신 피로 새언약을 세우셨습니다(요 19:30, 요일 5:4). 흘리신 피로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를 이루셨습니다(히 9장, 행 2장). 새언약의 체결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체결했다(요 13:34-35). 언약의 유효성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 오순절 하나님의 성령으로 성취되었다. 그리고 유대인의 남은자를 모으시고 완전한 교회 시대를 이루었다.

성경에서 언약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담당하시는 모습으로 제시되고, 독생자께서 언약을 성취하시고 성령을 파송하는 것으로 계시의 점진성이 완료된다. 수 없이 많은 시간에서 백성에게 언약을 성취하시는 언약의 주의 오심을 기다리도록 훈련시켰다. 종교개혁가들이 성경전체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개념인 ‘언약’을 세우고, 성경 기반 위에 구원을 얻을 진리를 세울 수 있도록 확립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II권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율법 아래에서 믿음의 조상들에게 현시되었고 그리고 우리에게는 복음 아래서 계시된 것으로 제시했다. 성경 이해에서 율법과 복음과 관계, 구약과 신약 관계 정립은 언약 이해를 하는 것만큼 중요한 과제이다. 개혁신학에서 언약을 영원에서 삼위하나님께서 체결한 구원협약으로 발전시켰고, 의의 전가 교리로 확대시켰다. 율법과 복음과 관계, 구약과 신약 관계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칼 바르트는 율법과 복음 관계를 복음일원화로 전환시켰고, 복음을 강조한다는 명분으로 신학계와 교회를 침몰시켰다. 칼빈의 언약 이해는 한 언약 개념이지만, 율법과 복음 그리고 구약과 신약 개념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고 성경 본문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확실한 계시 이해와 연관 관계를 확립하며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증진시킨다(엡 3:18-19). 언약 이해를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성경을 읽으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증진시킬 수 있으며, 창조 영역에 그리스도인으로 역동적인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에타 린네만은 기독 지성인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선결된 뒤에 전문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역자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문화 영역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문화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진행할 것으로 제언한다. 

성경에서 언약과 조약이 나타난다. 조약은 국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국제법이 등장한 것은 1648년 베스타팔렌 조약(Peace of Westphalia)으로 제시한다. 필자는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근대 유럽, 국경선이 형성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우리의 국경선은 2차 대전 이후에 강제적으로 형성된 선(線, line)이다. 조약으로 유럽은 약속 문화로 확정되었다. 약속은 시계와 관련되어 시계가 명품이 될 수 있는 이유도 만들었다. 유럽 사회는 기독교사회라고 할 수도 있고, 세속사회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은 세속화에 최선봉이고 윤리의 표준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독교화된 지역에서 동성혼인이 통과되었고, 교회는 동성애자에게 세례를 베풀 뿐만 아니라 사역자 허용까지 진행한 단체가 있다. 특이하게 비기독교화 지역에서 동성혼인을 인정한 곳은 없다.

언약을 근거로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은 계약에 대해서 면민하게 이해해야 한다. 모든 것이 법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가들은 법을 전공한 사역자들이 많다. 그래서 교회질서를 체계적으로 세웠다. 그리스도인은 법 이해 능력이 높아야 한다. 언약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법 이해가 증진되어야 한다. 법은 매우 합리적이고 공정한 구조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합리와 공정을 이룰 능력,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 5:9).

그리스도인 청년은 인생을 설계하고 구체화하는 시절이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성적에 따라서 직업이 정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생은 성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행동은 의지가 선행한다. 의지가 후행한다면(뒤에 있다면) 그의 인생은 비극이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자기 인생을 결정하고 기쁘고 생기있게 정진할 수 있는 생(生)에 환희(歡喜)가 있어야 한다. 자기 생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식에 첫째이다(살전 5:16, 요 8:32).

기독교 문화관은 창조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지혜를 드러내는 사역이다. 그래서 창조명령인 땅에 충만한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사람과 모든 생명체가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이 기독교 문화의 기본이다. 그래서 생명이 가득한 하나님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구조와 배치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명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일을 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는 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택자를 불러낼 수 있는 복음 전도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기독교 문화가 복음 전도를 창출하고, 복음이 전도될수록 기독교 문화가 발달해야 한다. 그런데 서구 기독교는 사회가 시간이 경과될수록 기독교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교회당은 선술집이나 이슬람의 모스크에 팔려가고 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있어 구원의 종교로서 기독교를 바로 세우고 증진해야 한다. 그 사명이 한국 교회에 있다. 그 일을 감당할 인재와 재원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도 권력화된 기독교는 사회의 질타에서 견고한 진을 구축하고 있다.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는 자기 권력을 부정하고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한다. 그리고 더 발전된 모습으로 사회에서 활동해야 한다. 거창고등학교 직업 십계명은 그리스도인의 직업관에 중요한 관점을 제공하고 아직도 유효하다. 음지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최고 그리스도의 군사 요원이다(참고 엡 6장). 음지에서 양지로 향하고, 음지를 양지로 만들고 다시 음지로 향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복음 전도 능력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필자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전문가적 삶을 살라고 제언하고 싶다. 어떤 분야에 참여할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분야에서 전문가, 최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최고 전문가가 된다면 그 인생은 성공이고 복된 것이다. 청년의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성경 지식을 기본으로 자기 인생을 이루는 것처럼 복된 것이 없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어 서로 도우며 한 인생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알 수 없다. 각각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구원의 은혜와 문화 명령으로 운영한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합되어 열매를 맺는다. 포도나무에 포도송이는 크기와 당도가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포도나무 열매이다. 교회와 세상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도 만유의 주이시고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연합하여 두 가치(價値)를 실현해야 한다.

고경태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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