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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는 음녀

기사승인 2019.03.07  07: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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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암흑기 동안 로마가톨릭은 바벨론에서 탄생한 로마교의 가르침을 뒤섞어 넣으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살해했다. 무수한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재판을 통해 이단이라고 판결받고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받아 죽어간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신이 양심적으로 믿는 신앙 때문에, 로마교회가 강요하는 가르침과 우상숭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성서를 높이 쳐들고 죄를 대항해 피로써 항거한 5천만 명의 그리스도인 남녀가 로마교황권에 의해 살상되었다."
-J.M. Carroll, The Trail of Blood

"로마교회는 일찌기 인간 가운데 존재했었던 어떤 제도보다도 더 많은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했다. 역사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William Lecky, History of the Rise and Influence of the Spirit of Rationalism in Europe, Vol 2 p.35, 37

서기 538년 저스티니안 황제는 로마교황권에게 강력한 권세를 준다는 조서를 반포함으로써 교황권이 교회의 머리로서 모든 성도들을 장악할 수 있는 권한을 공인해주었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은 짐승이 권세를 누리는 기간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또는 ‘마흔 두달’이라고 말한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한다면 이것은 1260년의 기간이 된다.

"538년 로마교회의 감독은 세상 모든 교회들의 머리가 되어 이단자들을 처벌하는 자가 되었다. 그 해에 1260년간의 교황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J.A. Wylie, History of the Reformation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교황권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운동을 만나게 되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여파를 통해 결정적인 타격을 입는다. 1798년 프랑스 혁명정부의 명령을 받은 버티어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로마교황청으로 쳐들어가서 교황 피우스 6세를 그의 권좌로부터 끌어내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1798년 교황이 잡혀간 사건은 계시록의 짐승이 “죽게 되었던 상처”를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538년부터 시작된 1260년의 운명의 기간이 끝나는 해였다. 결국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이 망함으로써 로마교황권은 역사에서 사라져갔다.

교황권은 1798년에 죽게 되는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 짐승이 죽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말한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계 13:3).

1929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바티칸에 180에이커의 땅을 내어주며 로마교황청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는 일이 일어났다. 같은 해 2월 12일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인용해서 “교황의 죽었던 상처가 치료되다”라는 제목으로 톱기사를 전면 게재했다.

오늘날 교황권은 온 세계를 누비고 있다. 교황권이 잃어버렸던 정치적 세력을 다시 얻어 세계를 지배하는 권위를 회복하는 데는 미국이 크게 일조했다. 미국은 강력한 반 교황권 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1979년 9월 18일자 「워싱톤 스타」는 교황의 첫 번째 미국 방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했다.

"… 과거에는 교황이 미국을 방문한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벼락을 맞을 일이었다. 그러나 … 이제 역사상 최초의 폴란드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의 놀라운 선거를 치룬지 1년 만에 온 세계의 하늘에 빛나는 별로서 만 7일간을 우리와 함께 지내겠다는 약속아래 미국에 오게 되었다. 정치가들은 앞다투어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여섯 개 도시의 시장들은 그들의 도시 업무를 실제적으로 중단하고 교황을 맞이할 행사를 열렬하게 준비했다."

개신교의 종교통합 지도자인 빌리 그래함 목사도 교황의 미국 방문을 크게 환영하면서 1979년 9월 27일자 「종교 뉴스」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미국 방문은 로마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세계는 물론이요 온 미국 사람들에게 참으로 의미깊은 사건이다 … 그가 교황이 된 기간은 짧으나 현 시점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가 여행하는 동안 나의 기도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개신교도들의 기도가 그를 위하여 드려질 것이다."

2005년 4월 8일에 있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는 온 세계의 왕들과 대통령들이 모여와서 로마가톨릭교회의 미사의 떡을 받아 먹으며 깊은 존경을 표했다. “죽게된 상처”가 나으며 과거 중세기에 있었던 교황의 세력이 살아난 것이다.

성경은 음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 여자(음녀)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계 17:4).

자주 빛과 붉은 빛은 바티칸의 공식 색상으로 추기경 등의 고위 성직자들이 입는 옷 색깔이기도 하다. 금과 보석과 진주는 로마교황의 부와 사치를 가리킨다. 교황 비오 12세가 썼던 ‘티아라 Tiara’라고 하는 삼중관은 11개의 사파이어, 19개의 에메랄드, 32개의 루비, 252개의 진주, 529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미사에서 사용했던 금잔에는 500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

바티칸이 보유하고 있는 보석은 헤아릴 수 없고 값도 측정불가라고 한다. 시스티나 성당의 교황 제의실에는 진귀한 보석이 박힌 교황의 삼중관부터 교황이 미사를 집전할 때 쓰는 모자, 신발, 장갑, 금과 루비가 박힌 십자가와 촛대 등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다.5 바티칸 측에서는 가톨릭 신자들과 국가 원수들이 선물한 것이라고 변명하지만, 사실은 십자군 전쟁 등으로 무수한 인명을 살해하고 약탈한 보물과 문화재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십자군, 성전과 약탈의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말이나 당나귀를 끌어들여 성물과 보물을 실어 나르면서 당나귀가 미끄러져 넘어지면 가차 없이 죽여 버렸다. 십자군들에게는 이제 눈앞의 보물만 보일 뿐 신의 징벌도 두렵지 않았다."

요한계시록 13장은 첫째 짐승에 이어서 출현하는 둘째 짐승에 대해 예언한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땅, 새끼 양, 용과 같은 단어에 주목해서 설명한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계 13:11-12).

1) 땅에서 출현

‘땅’은 물의 반대로 해석할 수 있다. 성경은 물을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계 17:15)이라고 언급하며 인구가 밀집한 지역을 표현한다면, 반대로 땅은 사람이 없는 적막한 곳을 상징할 수 있다. 다니엘이나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다른 짐승들은 모두 ‘물’에서 올라오는데 두 번째 짐승만은 ‘땅’에서 올라온다고 했다. 다른 모든 제국들은 ‘물’과 같이 인구가 많이 밀집한 지역들에서 일어나지만 이 짐승은 ‘땅’과 같이 인구가 별로 없는 지역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G.A. 타운센드는 그의 저서 『옛 세계를 새 세계와 비교함』에서 “미국은 그 공허한 곳으로부터 나아오는 신비함이 있고, 마치 씨앗이 조용히 자라 큰 제국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유럽의 유력 신문 「더블린 내이션」도 “미국이 서서히 조용한 땅에서 올라와 매일 그 힘과 세력을 더해 가고 있다”고 기록한다.

2) 새끼 양의 모습

성경에서 새끼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새끼 양 모습의 나라는 기독교적인 모습을 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영국에서 이주한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로서 세계에서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라고 알려져 있다. 미국민의 상당수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3) 용의 권세와 용의 언행

일찍이 J.N. 앤드류스 목사는 장차 용의 권세를 행사할 이 짐승이 바로 미국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은 기독교 국가로 인식되었고 또 인디언과의 내전도 아직 종결되지 않은 불안정하고 연약하고 미미한 나라에 불과했다. 미국이 장차 용처럼 말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온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몰락한 후부터는 온 세상을 향해 용처럼 말하기 시작하는 초강대국 미국에 대하여 어떤 나라도 감히 대항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252).

김주옥 hannakim7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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