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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교회는 전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기사승인 2019.03.16  12: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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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전도나 선교에 있어 매우 열정적이라 선교는 ‘세계 2위’이고 전도는 최봉석 목사부터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인 노방전도의 인기와 대중 전도 집회 그리고 군선교(훈련소의 진중세례식) 그리고 사영리 및 각종 전도 프로그램 등으로 한국교회의 성장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도 방법들을 개혁주의 교회도 받아들어 왔지만 이제는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물어야 할 시기이다. 즉 이러한 전도 방법들이 사실은 ‘복음주의’나 ‘알미니안주의’가 신학적 배경이고 ‘인본적 방법’이 아닌지를 물어야 한다.

미국의 풀러신학대학원 교회성장학 교수로 유명했던 피터 와그너는 ‘복음전도의 3가지 접근방식’으로 현존, 선포, 설득전도를 주장했는데 그동안의 한국교회의 전도는 주로 ‘선포’이고 10년 전부터는 ‘설득’이 인기가 있었는데 문제는 이 2가지 방식이 개혁주의 관점에서 볼 때에 바람직한 전도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선포전도의 문제’는 전도 대상자에 대한 배려 자체가 없는 일방통행으로 노방전도가 여기에 속하고 서울의 명동에 가면 지금도 볼 수 있고 이러한 전도방법이 비신자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생각하면 매우 안타까운 현실로 성경의 전도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왜곡되게 이해한 결과라 할 수 있고 이와 관련된 책과 동영상이 인기를 얻어 한 때에 ‘맨발의 성자 C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설득전도의 문제’는 전도 대상자에게 논리적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라 주장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과연 이러한 방법이 전도를 하나의 방법론으로만 이해하여 전도 프로그램으로 교회성장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만들고 전도라는 명문 아래에 온갖 인본적 방법들(열린 예배의 죄인이 아닌 구도자 이해, 유명인사 초청 간증 등)을 동원하여 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의 접근방식에서 선포와 설득은 사실상 전도 대상자를 배려하지 않거나 인본적 방법들을 동원하여 행하기에 부작용이 크다는 것을 그동안의 한국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는데 바로 ‘명목상의 신자(Nominal Christian)’의 증가다.

이러한 비참한 현실에서 ‘신학적 반성’을 가져야 하지만 안타깝게 지금도 선포와 설득전도를 추구하는 ‘오직 전도’에만 목숨을 걸고 신자들을 전도자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교회성장만을 추구하는 목사들이 많아서 이와 관련된 각종 전도 프로그램이 아직도 인기가 많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도 방법에 반드시 신학적 반성이 필요한 이유는 전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Lordship)’이 사실상 결여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미국의 제 2차 대각성 운동을 이끈 찰스 피니는 “전도는 하나님의 일 100%와 인간의 일 100%”로 이해하였고 그의 신학적 배경에는 장로교회 목사인데도 불구하고 알미니안주의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사실상 칼빈주의이고 번역을 정암 박윤선이 개혁주의)에서 전도는 제임스 패커의 주장대로 “전도는 하나님의 일 100%와 인간의 일 0%”로 전도(선교)에 있어서 주권이 인간 자유의지의 결정이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이다. 즉 그는 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 어떻게 죄인된 인간이 구주의 필요성을 깨닫고 믿을 수 있느냐와 인간의 스스로 결정하여 믿을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은 바른 신학적 이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전도 방법들이 군중 심리를 이용하거나 너무 쉽게 영접을 할 수 있다는 인간의 책임으로 보는 것이 대중적 이해지만 조직신학자 김광열 교수는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에만이 인간은 눈을 뜰 수 있고 어두움을 깨치고 빛으로 나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시대의 진정한 부흥이란 인간의 계획과 열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베푸심으로 말미암아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는 개혁주의 교회들이 들어야 할 참된 가르침이다.

그리고 죄인된 인간을 전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나 교회성장의 목적이 아닌 사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개혁주의 전도(선교)의 목표다.

그래서 개혁주의 설립자인 칼뱅이 교회개혁의 ‘5대 오직(5Solas)’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D.G.)”이고 신자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를 넘어 “하나님과 함께(cum Deo, 에녹과 노아의 삶)”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

이러한 개혁주의 전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면 지금부터는 일방통행인 ‘선포전도’로서 노방이나 방문전도를 하지 않고 ‘설득전도’로 각종 전도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이벤트 및 물량적 전도를 하지 말고 회심하지도 않는 신자들을 일방적으로 엉터리 전도자를 만들려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참한 한국교회의 전도의 현실에서 개혁주의 교회들은 전도를 어떻게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성경적이고 신본적인 접근방식이 피터 와그너의 표현대로 한다면 ‘현존전도’이고 바르게 개혁주의 관점으로 표현하면 ‘관계전도’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계전도’는 전도 대상자에게 이웃이 되어 인격과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신약성경의 ‘초기교회’에서 볼 수 가 있다(행 2:43-47). 즉 관계전도란 전도 대상자에게 필요한 것에 도움을 주는 ‘참 이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교회의 부흥의 힘은 사도들의 기적 능력이 아니라 바로 당시의 전도 대상자가 필요로 하는 것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나눔과 청빈’에 있었던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초기교회의 정신이 바로 진정한 ‘관계전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전도 방법들은 전도자인 신자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이도 할 수 있는 방법이기에 절대로 진정한 전도가 될 수 가 없는 것을 한국교회의 현실로 알 수 있다(예로 개독교와 목레기 그리고 장로들의 수난 그리고 각종 사이비 및 이단 등).

그렇다면 지금부터 올바른 전도를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작업은 ‘관계전도’이기에 신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복음의 뿌리를 내리게 하는 일’로 ‘교리교육’을 해야 하고 교재로는 개혁주의 교리교육서로 가장 탁월하고 52주로 만들어진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을 사용하면 된다. 즉 전도자가 될 신자부터가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거듭남이 되어야 하므로 칼뱅은 “하나님의 교회는 교리교육이 없이는 결코 보존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개혁주의 교회들은 연중행사로 했던 ‘이웃 초청 잔치’를 비롯하여 ‘각종 전도 프로그램’을 중지하고 ‘전도 강사 초청(제대로 전도한 자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야 한다.)’도 하지 말고 더 나아가서 ‘열린 예배(구도자 예배)’와 ‘유명인사 간증 집회’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전도(선교)란 예수님의 지상 대 위임대로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어야 하므로 반드시 신자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교리교육’을 통한 바른 복음을 알고 자신의 삶의 변화(그리스도인 정체성으로 ‘작은 예수’가 되기)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관계전도’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개혁주의 교회들이 실천해야 할 ‘전도’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상당수는 선포나 설득전도가 아닌 친구나 이웃 그리고 친척 등의 관계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성경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관계전도’다. 즉 복음은 반드시 ‘인격적 만남’에서 전달이 되어야 ‘전도’라 할 수 있다.

김만옥 potentia-de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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