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롱크의 책「도르트신조 강해」을 번역하여 국내에 보급한 사람은 현재 카나다에 거주하는 공학도 황준호 씨이다. 지난 번 글에서 황준호 씨가 다음과 같이 비성경적인 율법구원론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구원은 모두 율법에 대한 일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영생을 얻으며,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 사람의 문제이며, 예수님은 구원자로서 자기 백성 대신 율법을 지키고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셨으며,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율법을 지키기 시작하며, 천국은 완벽히 율법을 지키는 곳입니다.” (황준호, 구원은 모든 것이 율법에 대한 것임, 2019.2.24)

오늘 황준호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율법을 지켜야 생명에 들어가”라는 제목의 또 다른 글을 살펴보았다. 그의 글의 첫 문장의 매우 짧으나, 사도 바울이 저주를 선언한 갈리디아교회에 들어온 이단 사상과 동일한 내용이었다.

“성경은 율법을 지켜야 영생에 들어간다는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황준호, 율법을 지켜야 생명에 들어감, 2019.2.15)

지난 수년 동안 한국의 청교도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저명한 교수들, 목회자들, 신자들이 호평하였던 대표적인 책을 번역한 사람이 이런 신앙을 신봉한다는 것에 대해 충격받지 않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동시에 황 씨 같이 구원을 주는 율법준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이 지독하게도 저주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믿음이 구원이라고 가르쳤다. 예수 믿음의 내용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하나님께 배상했고, 믿음과 성령으로 예수와 연합된 사람은 영원한 칭의를 얻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그리스도 사건의 해설자 사도 바울은 단 한 번도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개혁신학의 판을 만들었던 존 칼빈 역시 율법을 지켜서 구원 얻는 다고 말한 적이 없다. 칼빈의 말을 보자.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못하므로 우리는 약속된 생명을 받을 수 없고, 다시 완전한 저주로 떨어진다 ... 율법의 교훈은 인간의 능력을 훨씬 초월한 것이므로, 사람은 제시된 약속을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그 약속에서 혜택을 얻을 수는 없다 ... 사람은 자기의 불행을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며, 동시에 구원받을 소망이 없어졌으므로 자기는 분명히 죽으리라는 위협을 느낀다 ... 협박은 우리를 지나지 않고 가혹하고 무자비하게 추궁하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에서 가장 임박한 죽음을 볼 뿐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2.7.3.)

“다른 곳에서 바울은 ‘율법은‥‥‥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갈 3:19). 즉, 사람들이 자기의 유죄를 깨닫게 함으로써 그들을 겸손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를 찾기 위한 참되고 유일한 준비가 되므로, 바울이 여러 가지로 표현한 교훈들은 서로 잘 일치한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2.7.2)

모세를 통해 주어진 구약의 율법의 기능과 목적은 죄인을 절망하게 만들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정죄 아래 있는 죄인들을 위해 스스로 율법 아래 태어나셨고, 율법의 과정을 거치시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셨다. 율법의 요구대로 죽으심으로 율법의 마침(롬 10:4)이 되시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자기의 몸으로 모든 율법을 폐하셨다고 성경은 말씀 한다 (엡 2:15).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가 십자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의와 구원을 주셨다고 선언하며 구원을 설명한다. 창조주께서 타락하여 죽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회복하시기 위해 죄 없는 인성을 지으시고 자신에게 연합시키시어 죄 없으신 사람이 되시어 오시었다. 창조주가 타락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으로 잃어버린 자기 백성을 다시 만드셨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예수 믿음이 우리의 죄 씻음이고, 예수 믿음이 우리의 영생이고, 오직 예수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전부라고 말씀 한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대체 성경 어디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 한 줄이라고 찾을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의 성경에 의해 저주 받은 황준호 씨는 레위기 18장 5절과 그 말씀을 인용한 바울의 로마서 10:5절의 말씀이 본래 율법 지킴이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은 율법을 지켜야 영생에 들어간다는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하신 레위기 18장 5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여호와니라’라는 말씀으로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하신 말씀을 인치셨습니다 ... 로마서에서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라고 10장 5절에서 말한 뒤, 이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말합니다.” (황준호, 영생을 지켜야 생명에 들어감, 2019.2.15)

그러나 레위기 1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풍속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라 근친상간, 간통, 동성연애, 짐승과 성행위 등의 죄악으로 땅을 더럽히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근친상간, 수간, 동성애 죄를 범하지 않는 수준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성경이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레위기 18장 5절에서 율법을 행하는 자가 “그 의로 인하여 살리라”라고 하심은 결코 율법준수가 영생의 의를 준다는 뜻이 아니다. 애굽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의 더러운 죄악을 본 받아 하나님이 주신 땅을 더럽히지 않으면 심판으로 죽는 일이 없을 것임을 뜻하는 말씀이다. 그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바울의 로마서 10:5절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도 황준호 씨가 왜곡하는 것처럼 율법준수에서 영생이 나온다는 의미가 아니다. 왜 당치 않게 말씀을 왜곡하면서 원래 기독교가 율법준수로 구원의 의를 얻는 종교라고 속이는 것인가?
 


오히려 다음의 말씀들을 보면, 사도 바울은 율법준수로 구원의 의를 얻는다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함을 가르쳤다.

“만일 능히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다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니라.” (갈 3:21)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 2:21)

프롱크의 책을 번역한 카나다에 사는 공학도 교민 황준호 씨는 복음을 왜곡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준엄한 저주를 자청하였다. 속히 깨닫고 자복하여 진노하심과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황준호 씨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묻은 십자가를 반토막 내고 대신에 율법준수라는 막대기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황준호 씨는 여전히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자기가 율법을 지켜야 하니, 내가 아닌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신 것을 자기 것으로 여김 받지 않고서는 영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님의 율법을 지키신 것이 내 것이라는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의의 전가입니다.” (황준호, 영생을 지켜야 생명에 들어감, 2019.2.15)

황준호 씨가 하나님의 참 백성이면 마땅히 “예수가 나를 대신하여 피 흘리고 죽은 것을 내가 죽은 것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황준호 씨는 무엇이라 말했는가?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님의 율법을 지키신 것이 내 것이라는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의의 전가입니다.” (황준호)

이런 말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 어떤 새로운 사도가 카나다에 가서 새로운 기독교와 새로운 성경을 써서 이 사람에게 전하였는가? 너무나 어이없는 사변이고 무의미한 사색이다. 성경 66권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 섬김의 절대적 근거와 기준임이 확실하면, 이런 주장은 결코 불가능하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최소한 그리스도께서 지켜야 할 율법의 종류는 몇 개였고, 그리스도께서 언제, 어떻게 그 율법들을 모두 지키셨는지를 보여주는 통계나 도표를 하나라도 만들어서 설명해야 한다. 그 정도 성의를 가지는 것이 ‘다른 복음’을 주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일 것이다. 필자도 매일 성경을 읽고, 연구하며, 가르치지만, 아직 예수께서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고 전가하셨다는 단 한 줄의 내용을 성경에서 보지 못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 흘리고 죽으심이 우리의 의이며, 구속이라고 한다. 여기서 벗어나면 저주받을 이단이라고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2)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 6:14)

황준호 씨의 '다른 복음'을 소개하는 이 전의 기사 밑에서 황준호 씨의 글의 뒷부분을 보니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의 내용이다. 

“그러니 개혁주의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강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알미니안은 나의 행위, 나의 믿음을 강조합니다. 개혁주의에게 믿음은 예수님과 그가 이루신 모든 것을 받는 빈손이며, 예수님께 내 몸과 영혼을 의탁하는 것이며, 예수님 안에 숨는 것입니다. 반면에 알미니안에게 믿음이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다 초점이 나의 열심과 노력에 맞춰집니다.” (황준호, 구원은 모든 것이 율법에 대한 것임, 2019.2.24)

알미니안들은 스스로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하고, 개혁주의자들의 예수께서 이루신 것을 빈손으로 받고 의지한다는 이단자 황준호 씨의 말은 그럴싸하다. 만일 황 씨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염두하고 이 같이 말 했다면 본인은 그를 형제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단자 황씨는 예수께서 십계명과 모세의 율법들을 다 지키신 공로를 통해 우리를 의롭게 만들었다는 ‘다른 복음’의 관점에서 저렇게 말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아니라, 예수의 율법준수가 나를 위한 율법준수이심을 빈손으로 받는 자세로 예수의 의의 전가를 얻는다는 성경에 없는 거짓 복음이다.

오늘 살펴본 황준호의 글 “율법을 지켜야 생명에 들어감”(2019. 2. 15)에도 동일한 속임수가 또 있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복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말은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이루신 의를 내 것으로 받는다.’는 말입니다.” (황준호, 구원은 모든 것이 율법에 대한 것임, 2019.2.24)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보고서 또 황 씨의 신앙이 정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단자 황 씨가 말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도 성경대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의가 아니다. 성경에 전혀 없는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를 믿음으로 얻는 의를 믿는 것을 뜻한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프롱크의 책을 번역한 황준호 씨는 저주 받을 이단자이다.


황준호와 프롱크 교수의 공통점

심각한 사실은 성경이 저주하는 황준호의 '다른 복음'이 프롱크에게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프롱크는 황준호가 번역한 책「도르트신조 강해」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이루셨고, 사람의 죄에 대한 값을 하나님께 지불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로로 얻으셨습니다.” (p.73,74)

“죄인은 자신의 대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그 죄인에게 전가됩니다.” (p.236)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위해 주님의 모든 계명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자신의 죄의 짐을 느끼는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p.268)

프롱크의 이 말은 1)예수의 십자가의 피는 단지 우리에게서 형벌만 떠나게 했을 뿐이고, 2)예수가 십계명과 모세의 율법들을 다 지켜서 얻은 의로 우리를 적극적인 의인이 되게 하였다는 매우 비성경적인 가르침이다. 예수의 십자가를 절반으로 분지르는 위험한 사상이다.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이 우리에게 의와 구원을 주었다는 성경의 사도 바울의 복음과는 '다른 복음'이다. 동일한 사상이 황준호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아담에게는 이제 두 가지 빛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두 가지이니 빛도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죄를 지으면 죽는다고 하셨으니, 아담에게는 죽어야 할 빛이 있고, 둘째, 하나님께서 영생에 들어가려면 말씀을 지키라 하셨으니, 아담을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담을 포함한 죄인들을 구원하는 죄인을 대신하여 이 두 가지 빚을 다 하나님께 갚아야 합니다. 먼저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죽어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야 하고, 또 율법을 다 지켜서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황준호, 죄사함과 의를 구별하지 못하는 잘롯 ... 219/2/17)

사도 바울은 머리가 나빠서 예수의 십자자의 죽으심과 율법준수를 따로 언급하지 못했을까? 사도 바울은 미련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이 우리의 의이고 죄 사함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일까?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프롱크와 황준호의 복음은 매우 유사하다. 둘 다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치는 종교이고, 절반의 기독교이다. 첫 인간이 율법 때문에 망했고, 율법을 지키신 예수 때문에 다시 산다는 종교이다. 예수의 피 흘리심이 전부인 기독교가 아니다. 두 사람의 말을 비교해 보라!

“복음은 죄인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어떻게 회개가 일어납니까? 그때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금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시고, 우리는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구원받았는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입니다.” (프롱크, p.264)

“구원은 모두 율법에 대한 일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영생을 얻으며,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 사람의 문제이며, 예수님은 구원자로서 자기 백성 대신 율법을 지키고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셨으며,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율법을 지키기 시작하며, 천국은 완벽히 율법을 지키는 곳입니다.” (황준호, 구원은 모든 것이 율법에 대한 것임, 2019.2.24)

성경을 절대적 기초로 삼는 기독교는 예수의 피 흘리심이 중심되는 종교이다. 창조주가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자기 피조물들을 되돌리기 위해 성육신하시어 구원하신 종교이다. 성경은 성육신의 목적이 우리 대신 죽으시고 피 흘리시기 위함이라고만 말한다. 율법준수하기 위해 성육신했다는 내용이 성경에 단 줄도 없다. 율법구원 이단자가 자기 종교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번역한 책을 위해 한국의 저명한 교수들이 나서서 아름다운 추천사를 바쳤다.

김병혁(SDG 개혁신앙연구회 대표)
김병훈(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류호준(백석대학교 신학부총장 겸 신학대학원장)
송영찬(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이성호(고려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이승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임경근(다우리교회 담임 목사)
황대우(고신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조엘 비키(Joel R. Beeke, 미시간 그랜드래피즈 청교도개혁신학교 학장)
L. W. 빌커스(미시간 그랜드래피즈 청교도개혁신학교 목회신학 방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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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