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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진리로 복된 한국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사승인 2019.03.23  06: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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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목사님, 오륜교회 김은호 목사의 설교의 일부분입니다. 정확하게 언제의 설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음의 내용은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죄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것이 괜찮은지 의견을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 흘린 피는 인간의 피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잖아요. 만일에 예수님이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왔다고 한다면, 그 피는 오염된 피지요. 아담과 하와의 그 원죄를 갖게 되는 피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아담과 하와 이후에 유전적으로 흘러오는 죄를 갖게 되기 때문에 그 피는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시어서, 여자의 자궁만을 빌려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인간이 되셨고, 오염되지 않는 정결한 피를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피 흘리고 죽으셨어요.” (김은호 목사)

 

답변>
김은호 목사님은 죄가 피를 통하여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유전된다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은호 목사의 다음과 같은 표현들은 모두 인간의 피 속에 죄의 오염이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피는 오염된 피’

‘그 원죄를 갖게 되는 피’

‘유전적으로 흘러오는 죄’

‘오염되지 않는 정결한 피’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몸의 유전자들과 피를 죄가 유전되는 통로가 된다고 말하면,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게 됩니다. 죄는 인간의 인격 속에 거하여 생각, 말, 행동, 의지 등으로 나타나는데, 인격 속에 있는 죄성을 몸의 유전자, 피, 또는 인체의 다른 무엇으로 증명하거나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담으로부터의 내려오는 죄의 전가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 죄의 오염과 부패가 나타난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 이상으로 나아가면 안 됩니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순간 큰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킬빈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독교의 모든 교리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 이외의 그 어떤 모호한 문제에 대하여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심지어는 알려고도 하지 않도록 겸손과 진실에 관한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1.14.4)

성경이 말하지 않는 예수님이 율법을 지켜서 우리에게 하나님 백성의 권리(의)를 전가하여 주었다는 등의 교리를 만드는 것을 칼빈을 싫어했습니다. 이전에 예수님도 자기의 구원을 위해 율법에 순종했고, 자기의 속죄를 스스로 이루었고, 믿음으로 얻는 칭으로도 죄책이 남아 있고, 예수께서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여 우리에게 의(하나님 백성의 자격, 권리)를 전가하여 주셨다는 교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무시기 목사도 김은호 목사와 같은 주장을 했었습니다.

“셋째, 범책은 부모로부터 전달(propagation)받는 방식, 벌책은 행위언약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매개 없이 전가(imputation)되는 방식입니다.” (무시기 목사, 2월 3일 페이스 북)

“ㅈ o ㅊ 이 나를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오염의 생식법에 의한 전달의 교리를 부정했다. 그러면서 영적 전가를 주장했다.” (무시기 목사의 페이스 북, 2월 19일)

“원죄가 부모를 매개로 전달된다는 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며 동시에 그 결과는 전통적 원죄교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무시기 목사의 페이스 북, 2월 19일)

“정통교의에서 성화란 죄의 바로 이렇게 우리 몸과 영혼에 스며있는 죄의 실제적 세력을 제거로 설명하는데 ...” (무시기 목사의 페이스 북, 2월 19일)

“우리 몸에 베여있는 실질적인 원죄의 세력에 대한 ...” (무시기 목사의 페이스 북, 2월 19일)

무시기 목사의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죄의 오염이 부모의 섹스, 임신, 출산을 종합하는 종족번식(propagation)을 통해 유전된다는 것인데, 필연적으로 피, 또는 몸의 유전자를 통하 죄의 유전을 의미하게 됩니다. 언약과 하나님의 법에 근거한 아담의 죄의 전가로 말미암아 죄의 오염이 인간에게 생득적으로 나타난다고만 말해야 합니다. 절대로 죄에 오염된 피를 물려받는다거나, 몸의 어떤 요소를 통하여 죄가 전달된다고 말하면 결국 문선명이나 박태선의 죄의 혈통유전설과 같아집니다.

칼빈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참고하면 좋을 것입니다.

“신학자의 임무는, 말을 많이 함으로써 귀를 즐겁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되고 확실하며 유익한 것들을 가르침으로써 양심을 강화하는 데 있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1.14.4)

김은호 목사가 정말 물리적인 의미로 죄에 오염된 피를 인간이 타고 난다는 뜻으로 말하였는지,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득적으로 죄로 오염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는지는 더 알아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여자의 자궁만을 빌려서’

이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인간됨을 부정하고, 예수님의 인간됨이 우리들의 인간됨과는 질적으로 다른, 즉 하늘에서 그대로 하강한 천상의 속성으로 지어진 인간됨을 말하는 것이므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잘 몰랐으므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표현이 나왔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누군가 잘 설명해 드리면 다시는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인간됨의 특징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한 인간됨이십니다. 단지 다른 점은 죄가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셔야만 다른 죄인들을 위해 드려지는 희생 제물이 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이용하여 예수님의 몸을 지으셨는데, 죄가 유입되지 않도록 특별한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의 몸을 지으셨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성령으로 잉태되시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 마 1:18)

성령께서 마리아의 살과 피를 취하여 예수님의 죄 없으신 인간성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의 몸과 인간성을 모든 면에서 우리 보통 사람들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신학에서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성으로는 하나님과 동일본질', '인성으로는 사람과 동일본성'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단지 여인의 자궁만 빌려서 하늘의 속성을 가진 특별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다면, 우리 보통 사람과 같은 인성이 아니므로, 우리 보통의 죄인들을 대신하는 대속제물이 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와 다른 속성의 몸으로 살다가 죽으신 후에 부활하셨다면, 예수님의 몸의 부활이 우리의 보통 사람들의 몸의 부활의 보증과 첫 열매가 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우리처럼 먹지 않으면 배 고프고, 과로하면 지치고 피곤하고, 병도 들 수 있고, 죽으면 부패하게되는 동일한 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의 부활이 곧 우리의 몸의 부활의 보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육체가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면, 바울의 주장은, 즉,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면 우리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할 것이요, 우리가 부활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도 부활하시지 않았으리라고 하는 바울의 강렬한 주장은(고전 15:12-20 요약) 무의미할 것이다. 고대의 마니교도들과 현대의 그 제자들이 어떤 궤변으로(이 증명을) 회피하려고 노력 하더라도, 그들은 성공하지 못한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2.13.2)

“사도들이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는 시편 제8편의 말씀으로 충분할 것이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眷顧)하시나이까"(시 8:4, 히 2:6). 이 말은 그리스도의 진정한 인간성을 표현한다. 그는 죽을 운명의 부친에게서 직접 나신 것이 아니지만, 그의 근본은 아담에게서 유래했다. 그렇지 많다면 내가 이미 인용한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그 자녀들을 자기에게 모아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히 2:14) 성립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똑같은 본성을 나눈 동지와 동참자라고 분명히 선언한다. 이런 의미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고도 한다(히 2:11상). 이 말씀에 곧 이어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하므로(히 2:11하), 문맥으로 보아 그 뜻은 본성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2.13.2)

정이철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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