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관들의 성경에 대한 특권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성경을 접한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었다. 성경은 아무나 접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인쇄술이 발달하고 그 책을 누군가 번역해야 대중들이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대를 파악할 수 있는 유럽 최초의 인쇄 문헌은 1454년 경 독일 마인쯔(Mainz)의 요한 구텐베르크(Johnn Gutenberg)의 인쇄소에서 출판된 것들이었고 최초 라틴어 성경 인쇄는 1456년 이 인쇄소에서 출판된 것이었다. 이렇게 인쇄술이 발달한 것은 겨우 15세기 후반부터였으니 과거 성경을 가깝게 접할 수 있었던 서기관들은 대단한 특권을 가졌던 셈이다.
 

종교지도자로서의 서기관

구약에서 서기관(히, 소페르)은 모세 율법의 해석자이며 교사였다. 본래 서기관은 고대 애굽에 있던 제도였는데 이스라엘도 다윗 왕 이후 서기관을 두어 국가의 기록관, 왕의 비서(대하 34:13), 율법을 필사(筆寫)하는 역할을 맡기게 된다. 이후 모세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율법에 정통한 종교생활의 지도자로 존중받게 되었다. 율법은 주로 제사 의식에 대한 규정이므로 초기 서기관들은 서기관 겸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경해석자 서기관

바벨론 포로 이후 성전 재건 때에는 제사장 본래 임무가 다양해짐에 따라 서기관으로서의 겸직이 힘들어지자 두 직분은 각각 분리되었다. 서기관은 전문직이라 서기관이 되고자 하는 자는 오랜 교육과 훈련을 거쳐 각 단계의 자격을 획득해야만 했다. 이 당시 대표적 인물이 바로 에스라였다(스 7:6).

이후 신구약 중간 시대 율법과 회당의 중요성이 높아지자 세속적인 성경 학자 계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들은 율법을 해석하고 율법의 요구 사항들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맡았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들은 성경 본문 수호자들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헬라의 위협 아래서 열렬한 율법 수호자인 이들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고 랍비 유대주의의 초석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이들은 토라를 해석함에 있어 바리새인들의 해석을 지지하였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

신약 시대의 서기관들도 성경에 능한 자(마 2:4; 막 1:22 등)들이었다. 다른 명칭으로는 율법사(노미코스)와 교법사(노모디다스칼로스, 눅 5:17; 행 5:34), 랍비가 있다. 신약시대 이들은 제사장, 장로들과 함께 산헤드린공의회의 주요 구성원이었다(마 16:21). 사두개파가 주로 제사장 직분을 독점한 반면, 서기관은 주로 바리새파에서 나오게 된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나 이들 대부분은 예수님을 적대시하여, 사두개파의 제사장들과 함께 예수를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데 앞장섰다. 또한 베드로, 요한 등 제자들을 박해하고(눅 22:2 행 4:5; 6:12), 스데반을 죽이는 데도 앞장섰다. 하지만 사두개파와는 달리 바울의 부활론에 동의한 바리새파 율법학자도 있었다(행 23장 참조).
 

예수님이 본 서기관

신약 성경은 예수님과 서기관들의 만남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마 7:29). 특별히 예수님의 죄 사함 선포에 대해 몇몇 서기관들은 참람한 일로 여겼다(마 9:3). 일부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치유 사역과 말씀 사역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막 3:22; 9:14; 11:27). 예수님은 이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義)로는 충분치 않다고 가르쳤다(마 5:20). 좋은 말이라도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충고하려 들면 반발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의 충고는 서기관들이 반발할 여지를 남기신 셈이다.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서기관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나 그들의 행위는 본 받지 말라고 하셨다(마 23:2-3). 또한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위선과 완고한 마음을 책망하신다(마 23). 이런 예수님을 서기관들은 죄인과 세리들을 미워하여 예수님이 이들과 거리낌 없이 식사를 나눈 것을 추궁하였다(막2:16).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대립하고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진 서기관도 일부 있었다(막 12:28, 32-33). 제자가 되려 했던 서기관도 있었다. 그런 서기관에게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 일의 어려움을 완곡하게 전하셨다(마 8:19-20).
 

서기관이 주는 교훈-성경전문가라고 방심하지 말라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압잡이라고 했다(잠 16:18). 사도 바울은 범사에 잘난 척하는 고린도교인들에게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다(고전 10:12).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많은 이들이 마치 대단한 성경에 대한 전문가가 된 것처럼 자기 신학, 자기 복음을 만들어낸다. 사실 성경은 그리 쉽게 풀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베드로 사도는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경고했다(벧후 1:20). 그동안 <바른믿음>은 한국 교회에 떠도는 당연한 복음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놀랍게도 반성경적 주장들이었음을 무수히 밝혀내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서기관들은 여전히 성경 필사자요 성경 전문가로 활동하였으나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참 된 분별력이 없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는 데 적극 가담했으며(마26:57), 초대교회를 핍박하는 일에도 앞장서게 된다(행4:5, 6:12). 성경을 자주 접하거나 많이 읽는 것이 꼭 능사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수님과 서기관 사이의 미묘한 관계는 오늘날 성경을 자주 접하는 신학자와 목사와 신자들에게도 많은 교훈이 되고 있다.

물론 모든 서기관들이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성경에 대한 열심은 정말 대단하였다. 예레미야 시대 예레미야는 두루마리를 취하여 네리아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매 그가 유다 왕 여호야김의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가 입으로 불러주는 대로 기록하였다(렘 36:32). 서기관 바룩은 예레미야와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숨기시고 보호한 인물이었다(렘 36:26). 실전된 성경을 기억한 예레미야나 선지자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말씀을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즐거이 기록한 서기관 바룩이나 대단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칼 세이건)이다. 어디든, 어느 세대든 남은 자는 있기 마련이다. 성경적 바른 복음을 전파하려고 전력을 다하는 <바른믿음>과 정이철 목사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조덕영(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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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다. 강남대, 개신대학원, 건양대, 명지대, 서울신(예장 합동), 서울기독대학원, 백석대와 백석대학원, 피어선총신, 한세대신대원에서 가르쳤고, 안양대 겸임교수, 에일린신학연구원 신대원장을 역임했다.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전 한동대총장 김영길 박사 공저), <기독교와 과학> 등 30여 권의 역저서를 발행했고, 다양한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한다.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비축하고 있는 인터넷 신학연구소'(www.kictnet.net)을 운영하며, 현재 참기쁜교회의 담임목사이며 김천대, 평택대의 겸임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