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비키 책 『은혜로 말미암은 준비』3장 분석(3)

조엘 비키 교수는 자신의 저서 <은혜로 말미암은 준비> 3장에서 율법의 저주가 죄인을 겸비하게 만들어 복음이 회심의 역사를 이루게 한다고 주장했다. 비키 교수는 윌리엄 퍼킨스의 말을 인용하여 율법이 죄인들의 회심을 준비시키기 위한 목회자, 하나님, 죄인의 역할이 다음과 같다고 설명했다.

“목회자들은 율법을 설교함으로써 죄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하여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아니라) 율법으로 죄인들을 누르시는 은혜로 일하신다. 죄인은 듣고, 읽고, 생각하고, 기도해야 한다.”(91 페이지)

회심준비론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목회자들이 율법을 설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을 설교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죄인의 회심을 위해 일하시지 못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 등이다.

대체 율법이 선포되어야만 죄인의 회심이 준비된다고 하는 이들의 주장은 어떻게 등장했을까? 윌리엄 퍼킨스의 말을 인용하는 비키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준비적 단계에서 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 교사’(갈 3:24)이다. 퍼킨스는 다른 곳에서 ‘율법, 특히 도덕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강력히 권고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죄를 보여 주고 치료되지 않을 경우 우리가 겪게 될 지옥의 형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90 페이지)

회심준비론에 관한 비키 교수의 핵심적인 주장은 사도 바울이 율법을 몽학선생이라고 말했다는 사실(갈 3:24)에 근거하고 있다. 바울의 그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율법을 보내어 인간의 죄를 규정하고 선언하셨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비키 교수와 회심준비론자들은 그것을 영원불변하는 죄인의 구원의 서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도 전도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먼저 전하지 말고 구약의 율법을 선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바로 그 다음 절에서 한 말을 보자.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타난 후에도 여전히 구약의 율법을 중심으로 신앙하려는 것은 마치 장성한 자녀를 계속 몽학선생에 붙여 놓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라고 바울은 설명한다.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갈 3:25)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는 구약의 율법에 머무르지 말고 곧장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해야 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면 율법은 영원히 그리스도의 복음과 무관해진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때 구약의 율법과의 관계를 설명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포할 때에도 구약의 짐승의 피 제사와 연관성을 설명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사실을 죄인들에게 깨닫게 하신다. 율법, 제사, 안식일, 할례 등의 구약의 특별계시들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되지 않으면 죄인들은 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완전한 구원자인지를 깨달을 수 없다. 그러면 성령께서 택하신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고백을 일으킬 수 없으므로 구원이 발생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무작정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 것이 아니었다. 구약의 특별계시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이 죄인을 구원하는 유일한 복음임을 증거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구원은 이렇게 얻어지는 것이지 비키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먼저 율법만 죄인의 마음에 때려 부어야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율법 없이 오직 성령의 역사로 죄인이 회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만나주시려고 자신의 작은 어선에 오르신 원 보혜사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다음과 같이 엎드려 고백하였다.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베드로가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 율법의 저주를 실컷 들었기 때문이었는가?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예수님 만나기 전에 베드로가 배가 터지도록 저주의 율법을 먹고 마셨다는 내용이 없다. 단지 사람으로 오신 원 보혜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 저절로 자신의 죄인 됨이 깨달아졌다. 죄인이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게 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조건은 오직 성령의 조명하심인 것이다.

밤낮으로 율법을 읽고 외웠던 구약의 유대교 신자들이 율법 덕분에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달았었던가? 그랬다면 그들이 예수님을 잡아서 죽였을까?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으면 율법을 가장 잘 아는 최고의 서기관이 될지라도 자신의 죄인 됨과 자신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다. 이스라엘의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죄인의 마음에 손길을 주시는 것만이 인간이 자기의 죄와 영혼의 비참한 운명을 알게 되는 유일한 길이다. 온 천하를 다 뒤져도 다른 길은 없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구약의 선지가 이사야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느낀 이유가 율법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었는가? 그때 누가 옆에서 그에게 율법의 저주를 퍼부었기 때문이었는가? 하나님의 진리의 빛의 조명하심이 아니고서 과연 죄인이 율법이나 그 무엇으로 자신의 죄인 되었음을 알 수 있는 길이 대체 어디에 있기에 아직도 회심준비론 타령을 쉬지 않는 것일까?

진정 회중교회의 회심준비론이 맞다면 사람의 구원은 반드시 2단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먼저 청교도 목회하는 교회에 등록해야 한다. 그런 교회에서 먼저 회심준비론을 적용받아야 한다. 저주와 심판의 율법을 강단에서 잘 퍼붓는 청교도 목사의 교회에 가서 앉아야만 구원의 가능성이 열린다. 율법의 저주와 심판을 가르치는 설교를 듣고 사람의 멀쩡했던 마음에 상처가 나야하기 때문이다. 그 상처가 절망으로 변하고 크게 덧이 나서 더 죽어야만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들어갈 자리가 비로소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회심준비론의 신학이고 사상이다. 율법의 저주를 듣고 마음에 절망하고 상처가 나지 않고서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다는 것은 없는 일이라는 것이 회심준비론의 기초적인 확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교도 신앙으로 설교하는 목회자들은 기존의 다른 교회의 신자들을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로 규정한다. 율법으로 상처내는 회심준비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 구원을 일으키는 성령의 회심의 역사가 일어난 적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청교도 회심준비론 가르치는 목회자의 교회로 이사한 사람들에게서 그런 경험을 했다는 보고가 나타나고 있다. 청교도 목회하는 교회에 출석하는 친척을 가진 어떤 사람은 필자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청교도 회심준비론 가르치는 교회에 다시는 친척이 있습니다. 이전 교회에서 배운 복음과 구원의 확신을 버리라고 한다고 합니다. 모일 때마다 철저히 회개해야 하고, 매일 울면서 기도하고, 구약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준비하고 있어야 구원을 주시는 성령의 회심을 경험한다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부활절과 성탄절도 비성경적이라면서 지키지 않습니다. 권사직도 비성경적이라며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진정한 개혁신학을 한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다른 교회에서는 구원이 일어나지 못하고 오직 청교도 회심준비론을 통해서만 구원이 일어난다고 가르친다면 이단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매우 심각한 일이다. 대체 어느 나라의 기독교에 그런 가르침이 있었는가? 정말 심각한 일이다.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그리스도의 복음 계시 해석에 관한 최고의 권위자인 사도 바울이 청교도들처럼 구원을 설명한 적이 있었던가? 바울이 그리스도의 증거하지 않고 먼저 율법의 저주를 전했다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일치단결하여 바울을 돌려 치려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떠난 후에 오실 또 다른 보혜사가 죄를 책망하고 깨닫게 하시는 분이라고 예수님은 설명하셨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8,9)

그리스도를 믿지 않거나, 그리스도를 성경과 다르게 고쳐서 믿는 행위를 책망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절대적은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복음 전하지 말고 율법만 전해야 성령의 역사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성령이 복음과 함께 역사하여 죄인을 회개시키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고백을 일으키신다. 그래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사도들이 그렇게 했고, 칼빈, 서철원 등도 그리 가르친다.
 


“이 믿음은 우리의 자연적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증거로 된다. 즉 중생하므로 믿음이 발생한다. 믿음으로의 결정이 성령의 증거로 이루어지지만 믿음의 내용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성령이 하신다.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므로 무한자를 우리의 자연적 능력으로 받을 수가 없다. 성령이 우리의 지각을 여사 우리도 받아들이게 하신다 ...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로 받아들이게 역사하실 뿐 아니라 칼빈의 가르침처럼 성령이 하나님과 그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손 노릇을 하신다. 그러므로 믿음은 성령의 중생 사역으로 발생하고 성령의 증거에 의해 활동한다 ... (중략)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곧 선포에서 온다고 하였듯이(롬 10:17) 믿음의 대상지식을 복음선포에서 온다. 온전한 복음이 선포되면 바르고 확실한 믿음의 대상지식을 얻는다. 복음선포를 들어서 믿음의 대상지식을 얻으면 믿음고백을 하여 믿음이 굳게 세워진다.”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104-105)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