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초기부터 설교에 있어서 ‘복음적 설교(사실상 주제설교 : 목사가 설교의 주제를 정하고 본문을 선택하는 설교)’를 중심으로 행해졌지만 10년 전부터는 ‘강해설교’가 유행하여 많은 목사들이 전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아직도 ‘자의적 해석’이 중심이 되기에 구약학자 김지찬도 비판하였다.

그렇다면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올바른 성경해석이란 역사적으로 검증된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주석 방법으로 해야 하는데 구약학자 김지찬의 지적대로 주석도 제대로 보지 않고 심지어 엉터리 주석을 보고 설교하는 목사들이 너무 많고 심지어 강해설교자의 메시지를 들어도 아닐 때가 많다.

그렇다면 이러한 심각한 문제가 있는 한국교회가 바른 설교를 통하여 ‘바른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설교의 형태’를 바꿔야 한다. 즉 복음적 설교나 어설픈 강해설교가 아니라 ‘성경적 설교(Biblical Preaching)’의 패턴인 ‘예전적 설교’와 ‘교육적 설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전적 설교와 교육적 설교가 무엇인가하면 우선적으로 ‘예전적 설교’란 기독교의 절기인 교회력을 중심으로 하는 설교로, ‘교회력’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의 교회 절기로 예수님의 인간으로 오심을 기념하는 ‘대림절’,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심을 경배하고 기념하는 ‘성탄절’,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념하는 ‘주현절’,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기념하는 ‘사순절’,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로 총 5가지 절기(Cycle)가 그리스도 중심이기에 초기교회에서부터 기독교의 절기로 만들어져 지켜왔는데, 안타깝게도 중세교회가 부패하면서 교회력이 그리스도 중심에서 인본적인 절기들로 자리를 잡았고, 특히 사순절이 더욱더 변질되어서 칼뱅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루터와 칼뱅은 기본적인 교회력은 인정을 하였지만, 청교도에 의해서 기본적인 교회력마저도 비판이 되어 개신교회에는 교회력이 무시 되었지만, 20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기본적인 교회력을 다시 회복하여 전 세계의 개신교회에 제시하여 오늘날 미국장로교회와 미국개혁교회도 지키고 있고, 한국의 장로교회도 지키는 교단이 있다(예장 통합, 기장).

그러나 한국교회는 초기 선교사들이 청교도 영향을 많이 받아서 기본적인 교회력마저도 무지하였기에 당연히 선교지인 한국에는 가르쳐지지 않아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복음적 설교’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는 한국의 신학교육과 목사의 질적 수준의 문제로 인해 본문이 주로 ‘바울서신’으로만 다루어졌고 구약은 사실상 설교가 되지 않아서 신구약 설교의 조화에 균형을 가지지 못하였지만, 10년 전부터 ‘강해설교’가 유행하고 더불어 ‘구속사적 설교’도 인기가 있어서 현재에 많은 설교자들이 나름대로 강해설교와 구속사적 설교를 하며 성경적 설교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즉 성경적 설교라 하기에 현실은 안타깝게도 성경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기보다는 엉터리 주석을 보거나 자의적 해석이 많고 특히 구속사 관점을 주장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모형론적 극대주의(조나단 에드워즈의 영향)’로 구약에 등장하는 많은 것들을 그리스도와 연결하는 무리를 하는데, 예를 들어 에덴 추방에서 입혀주신 가죽옷, 에서가 장자권을 넘기고 먹은 죽, 이삭 대신에 바친 숫양, 놋뱀, 성막, 라합의 밧줄, 보아스 등이라 주장하지만 올바른 모형론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성경적 설교는 예전적 설교와 더불어 ‘교육적 설교’인데 쉽게 이해하면 ‘교리교육(Catechism)’을 위한 설교이고 이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개혁주의 최고의 교리교육서인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으로 매주일 오후 예배(52주)에서 교육적 설교로 개혁주의 교회들이 행한 것인데, 오늘날 한국의 개혁주의 교회들은 안타깝게도 행하지 않고 다른 교리교육서로 한다는 것 자체가 한심하다.

그러므로 개혁주의(사실상 ‘칼빈주의’가 바른 번역) 추구한다면 반드시 교육적 설교로 교리교육을 해야 하고 칼뱅이 주장한 “하나님의 교회는 교리교육이 없이 유지 될 수 없다”고 한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설교는 두 기둥이 ‘해석과 전달’인데 안타깝게도 강해설교는 해석에는 충실하지만 전달에 문제가 있고 전달이라는 것이 단순히 기술적인 면(포즈, 아이콘택, 제스처)이 아니라 바르트가 지적처럼 설교란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신문”으로 자신이 속한 삶의 문제들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논해야 할 예언자적 사명이 있고 이것을 ‘적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적용을 위해서 성경의 해석에서는 칼뱅이 제시한 ‘3가지 규칙’으로 단순, 간결, 용감하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고 ‘단순’은 청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이고 ‘간결’은 설교자는 성경에서 벗어나는 쓸모없는 이야기와 수다를 금하고 본문을 중심으로 전해야 한다는 것이고 ‘용감’은 설교자는 청중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솔직하게 복음을 제시해야 결국은 청중에게 ‘바른신앙’으로 ‘복음신앙’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 현실은 안타깝게도 ‘복음신앙’보다 ‘율법신앙’과 ‘번영신앙’이 지배를 하고 있기에 ‘바른교회’보다는 ‘거짓교회’가 아주 많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교회는 ‘바른교회’가 ‘바른신앙’을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반드시 ‘복음신앙’을 만들고자 힘써야 하고 가장 우선적인 방법이 ‘설교’부터가 바르게 선포되어야 할 의무와 사명이 있다. 
 


그리고 설교에서 성령님의 역사가 중요하기에 설교자에게 경건(영성)이 중요하고 칼뱅은 ‘경건(pietas)’에 대해서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결합된 것을 말하는데, 이 사랑은 그의 은혜를 깨달아 앎으로써 오는 것이다(강요 1권 2장 1절)”라 하였고, 이 경건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며 사는 삶이 되어야 한다. 즉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입’이 되기 위해서 수사학(스피치)을 배우기보다 말씀과 기도에 전념(행 6:4)해야 하므로 반드시 성경 묵상 그리고 신학공부와 기도가 훈련이 되고 더불어 말씀과 일치하는 삶이 훈련되어야 한다(딤전 4:6-16, 칼뱅의 주장).

그리고 개혁주의 설교의 목표는 분명하게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에 설교에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죄가 논하여져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행복을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설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Dei gratia)”를 중심으로 인간의 구원(이중은혜설)과 신자의 삶(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을 강조(칼빈주의는 다른 신학 사상보다 은혜를 더 강조하고 더 중시한다 : 오직 은혜 Sola Gratia)하고 반드시 하나님나라(그리스도의 나라)의 위로와 소망으로 마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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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옥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개혁신학연구원, Knox Theological Seminary(D.Min.), Grace Theological Seminary(D.Miss.Pro.)에서 공부하였고, <성찬식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등 6권의 저서와 1권의 공저를 출판하였다. 전, 개신대학원대학교 강사였고, 현재는 경북 영주의 바른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바른성경아카데미(RBA) 원장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을 위해 실천하려고 연구하는 실천신학자이고, 또한 장례지도사로서 지역 사회를 섬기고 있다. potentia-dei@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