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교회교육’이 미국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지고 온 역사적 배경에는 선교사들이 1905년에 ‘선교사공의회’를 조직하고 ‘주일학교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시작이 되었고 서울의 연동교회, 평양의 장대현교회 등의 여러 교회에서 ‘소아회(小兒會)’라 칭하고 교재로 ‘주일학교 공부’라는 책이 나왔다.

그리고 주일학교위원회는 1911년에 세계주일학교연합회의 자문을 받고 조선주일학교연합회로 발전이 되면서 초대 회장으로 서로득(M.L. Swinhart)과 부회장에 윤치호 등으로 전국의 주일학교를 통솔하게 하였지만 선교사공의회가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1921년에 ‘제1회 전국주일학교대회’를 서울의 승동교회에서 개최하였을 때에 5천명의 신자들이 참여하였고 1922년부터는 선교사공의회에서 자립하여 연합체를 형성하여 조선예수교장로회, 기독교조선감리회 등의 10개 단체가 가입을 하였지만 사실상 1925년이 되면서 한국의 지도자들도 실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1929년에 ‘제3회 전국주일학교대회’에서부터 ‘조선주일학교진흥체’를 만들어 선교사에게 의존에서 한국인이 주도권을 강화하였고 1927년부터는 ‘계단공과’가 출판과 잡지도 만들고 1930년대부터 교회교육이 발전이 되면서 1948년부터는 총회명을 ‘대한기독교교육협회’로 개칭하였는데 그 이유는 ‘세계기독교교육협의회’와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해방 후 15년간 어린이 및 청소년의 주일학교는 대성황을 이루었지만 한국의 상황에 맞는 교재는 나오지 못하여 질적 문제가 되었고 1960년대가 되어서야 교회교육에 대한 반성이 되었고 1990년부터는 주일학교(교회학교)가 후퇴를 시작하여 지금은 전국의 교회에서 사실상 주일학교가 붕괴 직전에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교회교육의 위기에 처한 한국개신교회 중 특히 개혁주의 교회가 70% 이상의 교세를 가지고 있으며 교회교육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이고 무엇보다도 그동안에 해 온 방법들에 대해서 ‘신학적 반성’도 해야 할 것인데 그 이유는 ‘개혁주의 관점’에서 맞지 않는 교회교육의 방법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앞에서 논한 한국의 주일학교 역사를 넘어 기독교 역사에서 주일학교의 기원은 1780년의 신문업자이며 사회사업가인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가 영국 사회의 비참한 상황에서 그는 사회적 비전으로 가난한 어린이들이 무지와 가난 그리고 범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를 위한 방법을 연구하면서 ‘주일학교(Sunday School)’를 생각해 낸 것이고 이 운동은 1780년의 7월 첫 주일부터 시작하여 영국 전체에 영향을 미치어 1795년에는 25만 명의 어린이들이 주일학교에 참여했고 그는 성경을 도덕교육을 위한 기초로 제시한 것이다. 즉 기독교의 주일학교의 기원은 순수한 신앙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일학교는 영국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사실상 꽃을 피게 된 것은 미국이고 영국과 다르게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닌 종교를 위한 목적으로 미국에서 최초의 주일학교운동은 1780년 이전의 초기 청교도들의 손에 의하여 현대주일학교와 비슷한 학교를 설립하였고 처음에는 주일학교를 탄압을 하였지만 주일학교를 하나의 교육기관으로 인정하고 승인에는 감리교회였고 1820년대의 미국 주일학교 교육의 목적은 어린이의 회심을 준비시켜 신앙을 갖게 하는 일(회심준비론)과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런데 미국교회 안에서 주일학교는 시간이 지나면서 ‘신학적 문제’가 발생하는데 목사의 숫자가 적어서 교육을 신자들이 중심으로 이루어 지면서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부족으로 가르치니 ‘바른신앙’을 만들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미국교회의 신학적 문제는 사실상 현재의 한국교회도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기에 안타깝게도 교회교육은 사실상 실패작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에서 특히 개혁주의 교회들은 어떻게 교회교육을 바르게 갱신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시기로 우선적으로 그동안 행한 계단공과주심의 성경공부에서 벗이나 고대교회와 16세기 교회개혁을 통해서 실천한 ‘교리교육’으로 ‘변혁(Transform)’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루터는 처음에는 당시의 무지한 신부들을 위해서 ‘대교리문답’을 작성했고 나중에는 아이들을 위해서 ‘소교리문답’을 작성한 것을 볼 수 있고 특히 칼뱅은 이 교리교육의 중요성을 영국의 한 성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교리교육이 없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선한 씨앗이 죽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자라는 것처럼 왕성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오랫동안 붕괴되지 아니하고 튼튼히 서 있는 집을 짓기를 원한다면 자녀들이 아주 인상 깊게 이 교리문답서를 통하여 믿음에로 이끌어지도록 염려하고 돌보시오!” 라 한 주장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적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국개신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교회교육으로 ‘성경공과’가 아닌 사실상 교리교육이 필요하고 이 교육을 위한 ‘교리교육서’를 지속적으로 반복 학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리교육의 중요성을 루터와 더불어 칼뱅도 강조하였는데 그는 교리교육의 목표를 다른 영들에 대한 분별력,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변증력,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성숙한 신자로 만드는 것이라 하였고 자신이 만든 ‘제네바교리교육서’의 내용을 사도신조, 십계, 주님의기도, 성례전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칼뱅이 극찬한 교리교육서인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서’의 목적이 교회와 학교의 통일된 신앙고백서로 목사들이 청소년 및 성인 신자들을 위해서 1년인 52주 동안 사용할 수 있기에 오늘날에 유럽과 미국의 개혁교회들은 주일 오후에 가르친다.

이러한 사실에서 한국의 개혁주의 교회들은 이제는 ‘신학(개혁주의 입장)적 반성’을 통하여 그동안에 해 온 미국식 주일학교 시스템에서 버리고 교재도 ‘성경공과’ 중심이 아닌 개혁주의가 중시한 교리교육서인 다른 교육서도 아닌 오직 ‘하이델베르크교리교육서’만을 교재로 삼아서 가르쳐야 하고 루터가 아이들을 위해서 작성한 ‘소교리문답’처럼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서도 아이들의 눈높이 맞게 만들어야 할 사명이 있다. 즉 지금의 한국개신교회에서 사용되는 성경공과는 안타깝게도 사실상 성경을 바르게 이해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교재를 만든 출판사와 단체와 개인의 성경 이해가 ‘주관적 해석’과 더불어 ‘신학적 수준’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즉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증명된 교리교육서로 탁월한 교재로 기독교의 본질(십계, 주님의 기도, 사도신조, 성례전)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 학습을 통하여 ‘바른신앙’을 세우는 것이 절실하기에 “교회의 모든 연령의 신자들에게 성경공과가 아닌 반드시 교리교육서”로 가르쳐야 한다. 그렇다면 개혁주의 교회들은 당연하게 칼뱅이 극찬하고 외국의 개혁교회들이 사용하고 교리교육의 기본적 원칙을 따른 다른 교리교육서가 아니라 반드시 ‘하이델베르크교리교육서’만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며 마땅하고 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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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옥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개혁신학연구원, Knox Theological Seminary(D.Min.), Grace Theological Seminary(D.Miss.Pro.)에서 공부하였고, <성찬식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등 6권의 저서와 1권의 공저를 출판하였다. 전, 개신대학원대학교 강사였고, 현재는 경북 영주의 바른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바른성경아카데미(RBA) 원장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을 위해 실천하려고 연구하는 실천신학자이고, 또한 장례지도사로서 지역 사회를 섬기고 있다. potentia-dei@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