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율법을 더 많이 가르치는 것이 문제입니까?  청교도 회심준비론이 율법을 더 가르친다고 문제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답변>
청교도 목회자들의 회심준비론이란 것은 단순히 율법을 전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율법을 가르친다면, 어떤 면에서 매우 좋은 일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성경의 말씀 중의 일부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있어 매우 필요하고 좋은 성경적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에 비추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행 28:23)
 

청교도 회심준비론에 대해 간략하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1>
아담이 지키지 못해 저주받은 율법을 우리도 똑 같이 마주대하여 같은 저주와 절망에 빠지는 순서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회심준비론의 첫 번째 주장입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에게도 가는 길이 시작된다는 논리인데, 이것은 인간의 사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을 조건으로하는 율법을 지키라 명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저주하신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창세기에 그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 내용으로 추청할 근거도 없습니다. 

아담에게는 단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을 언제든지 자유로이 결정하여 표현하는 약정(선악과)만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음은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고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반역한다는 마음의 표시였고, 그래서 하나님이 저주하신 것입니다.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은 처음부터 성경에 없는 사변으로 시작합니다.
 

2>
청교도 회심준비론은 인간이 저주의 율법을 듣고 절망하면 하나님께서 영적 각성을 일으켜 주신다고 합니다. 영적 각성은 구원이 아니고 단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알게하여 주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적 각성은 구원이 아니므로 하나님이 회심준비론을 따라 하는 사람들에게 차별하지 않고 주신다고 주장합니다.

영적 각성은 단지 회심준비론의 가르침을 따라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구원의 필요성, 자기 영혼의 비참함을 절박하게 느끼고 구원을 사모하게만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합니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반응할 수 있도록 돕는 선행은총과 실질적으로 같은 것인데, 청교도 마니아들은 전혀 다르다고 우깁니다.

청교도 마니아들은 영적각성의 때부터 그 사람의 노력과 행동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각성된 그 사람이 어찌 하느냐에 따라 구원을 받기도 하고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영적 각성을 경험해도 바르게 구원을 추구하는 사람만 구원에 이른다고 하고, 그래서 특히 청교도 마니아 목회자들의 인도와 역할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청교도 회심준비론의 핵심입니다.
 

3>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회개하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영적 각성을 주시면, 그때부터 그 사람이 스스로 구원을 위하여 활동하기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구원에 이르게 할 ‘은혜의 수단’, 즉 예배, 기도, 성경공부, 목회자의 신앙상담, 율법준수 등을 통하여 스스로 구원을 탐구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죽은 상태의 영혼인데, 자기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예배, 기도, 회개, 성경공부, 신앙상담, 율법준수 등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 청교도 회심준비론의 핵심입니다. 영혼이 거듭나지 않고 여전히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구원을 갈망하면서 예배, 기도, 회개, 율법준수, 신앙상담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구원의 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결코 신약 성경과 종교개혁 신앙이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런 이상한 이론들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고 인간의 사변입니다.
 

4>
회심준비론의 가장 중요한 단계는 회심준비론을 따라가는 사람이 결국 그리스도의 구원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자신이 구원받을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께 요청하여 대신 율법의 저주를 받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신에게 적용하여 달라고 간절히 구하고 요청하는 것이 회심준비론의 핵심입니다.

이 단계에까지 도달하면 성령께서 진정한 회심을 일으켜주기를 한 달, 1년, 10년 ... 겸비해진 마음으로 계속 기다리는 것입니다. 대게 이 과정에서 진정한 성령의 회심의 역사가 찾아온다고 하는데, 그것은 주로 깊은 감정적인 체험들과 신비한 성령의 체험(?)들입니다. 청교도들은 구원과 '체험'을 깊이 연관시켰으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말하는 진정한 회심과 특이한 체험을 깊이 연관시키므로 청교도 사상은 현대의 신사도 운동이나 사이비 운동에서 나타나는 내용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회심준비에 대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기록을 보면 어이없는 이야기들이 나타납니다. 에드워즈는 한 사람이 회심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영적 각성이 되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부흥론」(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7권, 고언 편집, 양낙홍 역)(부흥과 개혁사, 2005).
 

“그는 자기가 하나님을 대항해서 죄를 범했다는 것 때문에 크게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 고뇌는 사흘 동안 점점 커졌습니다. 드디어 그는 자기 앞에 흑암의 어두움 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그의 전신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서리쳤습니다.”

“그 날 밤 잠 자리에 들었을 때 그는 다음 날 아침 꼭 목사에게 가서 어떤 위로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잠이 깨었을 때 그는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놀랐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많이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특별한 속성을, 때로는 일반적 속성을 깨달았습니다 ...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진리와 완전하심의 영광에 대한 감각에 사로잡혀 마치 죽을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쉽게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실 것 같았다는 것이었습니다 ... 누군가가 그에게 그 체험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다가 그 체험으로 말미암아 새삼스럽게 감동받아 기력이 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데려다가 침대에 눕혀야 했습니다.”

“한 번은 그가 동생에게 자기는 여러 날 밤낮을 계속 감당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황홀하게 맛보면 즐겼다고 말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청교도 회심준비론 같이 율법의 저주를 전하여 사람을 절망하게 할 때, 영적으로 각성되어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가고, 스스로 구원으로 인도하는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여 회심을 준비하고, 그 과정의 끝에서 이런 지극히 감정적이고 신비적인 성령의 회심체험을 한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성경을 그런 내용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독교 역사의 위대한 신앙의 스승들 가운데 이런 회심준비 과정을 주장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실 청교도 회심준비론은 1660년대 경에 이미 청교도 세계에서도 종지부를 찍었던 것입니다. 이미 끝났었습니다. 초기 신대륙의 청교도들은 어린 시절에 유아 세례를 받았을지라도 성인이 되어 이런 방식으로 자기의 회심을 경험했다고 간증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성찬식에 참여하게 허락했었습니다. 한 동안 그랬으나, 결국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회심준비론이 성경적이건 비성경적이건, 그 방식으로 자기의 회심을 증거하고 간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뉴잉글랜드에서 급속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그런 간증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다수가 되어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새로운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회심준비론을 따라 이와 같은 회심의 과정을 거쳤다고 간증을 할 수 없을지라도, 어린 시절에 세례를 받았고 특별한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고 교회에 다녔으면 성찬식에 참여하게 허락하는 것으로 정책을 바꾸었습니다. 그것을 청교도 '중도언약'(half-way covenant)이라고 합니다. 중도언약을 도임함과 함께 역사적으로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은 끝났던 것입니다. 청교도들 스스로 포기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살리려다가 망한 사람이 조나단 에드워즈입니다. 1750년경부터 성찬식에 아무나 참여하게 못하게 하고, 이와 같이 회심준비의 과정을 따라 진정한 회심체험을 경험했다고 간증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성인 세례를 주고 성찬식에 참여하게 하자고 에드워즈는 교인들에게 주장하였습니다. 이미 청교도 사회에서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것을 다시 시작하자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적이면 하나님이 도우셨겠지만, 사실상 이단 사이비 사상에 가까운 것이므로 하나님이 돕지 아니하셨습니다. 사람들도 전혀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에드워즈는 대부분의 교인들에게 버림당하여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에드워즈가 대 부흥(?)을 일으킨 교회에서 버림 받고 떠나게 된 것은 회심준비론 사상을 다시 되살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에드워즈가 “회심준비론 과정대로 회심을 체험했는지 설명하고 간증하세요!”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요구한 회심체험의 내용들은 회심준비론에서 당연시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신앙의 진실성의 여부를 사람의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사람이 납득하고 파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확하게 검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사람이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면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면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막을 길은 없습니다. 그것이 지상교회의 특징이고 한계입니다.

지상교회에서 성찬식에 참여한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무형의 교회에 꼭 속한 사람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상교회가 그 이상으로 성찬식에 참여할 사람을 선별할 기준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세례 받았고, 꾸준히 교회 출석하고, 특별한 죄악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이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제한하거나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청교도들의 사회에서도 이미 생명이 끝난 회심준비 사상에 여전히 고무되어 회심준비론의 서정과 기준을 따라 자신의 회심 체험을 간증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성인 세례와 성찬식을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사람과 하나님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일부에서 하는 청교도 회심준비론은 이미 청교도들의 세계에서도 수 백 년 전에 포기된 것입니다. 그것을 미국의 조엘 비키라는 교수가 다시 이야기하고 있고, 또한 한국의 일부 청교도 마니아들이 덩달아서 그것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고, 오히려 사이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게 만드는 길은 성경의 복음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전하는 것  뿐입니다. 그때 성령이 역사하시면 죄인됨이 깨달아지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의롭다 함'이 주어지고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구약 성경과 종교개혁이 강조한 '이신칭의', '법정적 칭의'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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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