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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훈 장로, 정이철 목사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사승인 2018.04.29  06: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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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훈 장로(라스베가스 브니엘 장로교회, 치과의사). 남가주대학(USC), 캘리포니아대학(UCLA), 미시간대학(U of M)에서 치과의사 공부를, 미주 총신에서 신학(M.Div)을 공부했다.


정이철 목사님의 오순절 신학과 은사주의 신학,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현대의 신사도운동에 대한 지식과 또한 그와 관련된 신비주의와의 논쟁과 투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앞선다. 그리고 개혁신앙을 버리고 현대 복음주의로 기울고 있는 총신과 또한 그것을 주도하고 있는 교회갱신협의회(이후 ‘교갱’) 인물들에 대한 그의 신학적 비판도 매우 놀라우며, 나도 정이철 목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1906년도 LA Azusa에서 일어났던 그릇된 부흥운동에 대해서도 정이철 목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당시에 일어났던 부흥운동의 주도자였던 윌리암 세이모어와 그 추종자들은 올바른 신학적 지식 없이 무조건 부흥운동을 시작한 것 같다. 그들은 방언을 나타나는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요즘 일어나고 있는 신비주의 운동은 불순한 동기, 즉 교회의 양적 성장을 목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마치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처럼 성령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권력과 배를 채우려고 있으니,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이 시대의 거짓 선지자(목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영적으로 부패한 한국교회의 실상을 정이철 목사님처럼 낱낱이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하여야 우리가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밝히 알고,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예장 합동 실행위원회의 가당치 않는 ‘정이철 목사의 이단성’ 운운하는 내용들이 교갱의 인물들에 의해 주도 되었다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일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개혁주의 신학노선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고 현대 복음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18세기 말과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한 신학자와 목사들에 의해 자유주의 신학이 확산되었고, 고등비평 등을 이용하여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깎아내리는 사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항하여 싸운 3개의그룹(group)들이 있었는데, 1)구 프린스턴 신학의 ‘성서무오설’, 2)‘세대주의’, 3)‘성결운동’이었다.

이러한 운동들이 D. L. Moody에 의해 통합되어 집대성 되었으며 또한 그가 주도한 Student Volunteer Movement를 통하여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아팬셀러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당시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나 대학을 선호하지 않고 성경만을 가르치는 성경학교들을 세웠다. 그래서 당시 한국에 들어온 많은 선교사들이 성경학교 출신들이었고, 신학의 수준이 낮은 편이었다.

또한 그 당시 한국에 들어왔던 신학도 구 프린스턴의 성서무오설과 같은 성서 제일주의와 칼빈주의의 장점도 있었지만, 세대주의 종말론과 성결운동에서 들어온 신비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성향도 한국에 함께 들어오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1920년대까지 D. L. Moody와 근본주의자들의 영향이 매우 강력했다. 1883년부터 1887년까지 “나이아가라 예언 사경회”를 통하여 보수적인 성경학자와 신학자들이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근본주의 5대 교리, 즉 1)‘성서무오’, 2)‘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3)‘십자가의 대속적 죽음’, 4)‘기적의 역사성’, 5)‘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과 재림’을 설명하고 강연하고 선포하였다. 1910년부터 1915년까지 ‘The Fundamentals’라는 소책자 운동을 통하여 근본주의 신학 5대 교리를 변증하는 내용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1924년의 PCUSA의 Auburn 선언을 통해 성서 무오설은 기독교에 해로운 교리라고 결정되었고, 1925년 테네시에서 열린 스콥스 재판(원숭이 재판)에서 창조론은 진화론에게 패배하였다. 1929년 PCUSA 교단 목사들을 양성 하였던 프린스턴 신학도 좌경화되어 그레이샴 매이천을 중심으로 보수진영의 교수들이 프린스턴 신학과 분리하여 Philadelphia에 Westminster 신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이렇게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에 의해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나 1940년대 들어 근본주의 진영의 2세대들이 영혼구원뿐만 아니라 1차, 2차 세계 대전을 통하여 생긴 빈곤, 구제, 전쟁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에 교회가 참여할 필요성을 느끼지 시작했다. 1940년대 초에 칼 멕킨타이어와 헤롤드 오켕가를 중심으로 ‘미국복음주의협회’(NAE)가 결성되었는데, “은사지속론을 주장하는 오순절 교회를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로 결국은 분열 되었다.

오순절 주의를 반대하는 칼 멕킨타이어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미국 근본주의협회를 만들었고, 오순절 주의를 수용한 해롤드 오켕가와 칼 헨리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은 복음주의협회(NAE)를 이어갔다. 그들은 1947년도에는 구 프린스턴의 정신을 이어간다는 것을 목표로 LA 지역에 Fuller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이쪽 사람들은 영혼구원을 우선시하나 동시에 교회가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였고, “너희 빛을 세상에 비취게 하여 세상 사람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은사지속론’을 주장한다는 면에서는 필자는 그들에게 동의 하지 않는다.

헤롤드 오켕가, 빌리 그래함, 그리고 칼 헨리 등 현대 복음주의 group은 자기들과 칼 멕킨타이어, 밥 죤스 등의 근본주의 group들과 구분하기 위해 자기들을 ‘신복음주의자’(Neo-Evangelicals)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노선이 그냥 ‘복음주의자’라고 불려지고 말았다.

오늘날 한국의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바로 이들 ‘신복음주의’의 신학 노선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예장 합동의 교갱에 소속한 신학자들과 목사들의 설교, 강의 등에서 방언, 예언, 환상등과 같은 은사운동 또는 신비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학의 뿌리가 은사지속론을 수용하는 ‘신복음주의’(현대 복음주의)이기 때문이다.

김리훈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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