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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에드워즈는 숲에서 무엇을 보았나? 그것이 알고싶다

기사승인 2018.11.10  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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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에드워즈가 그날 숲에서 정말 직통의 예수 환상을 보았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거짓 영의 미혹이었습니다. 그가 정말 직통의 예수 환상을 보았다면, 이후 대각성 부흥에서 벌어진 수많은 이상한 웃음, 이상한 울음, 몸의 마비, 몸의 진동, 쓰러짐과 실신, 입신 등의 거짓 영의 장난들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날 에드워즈가 숲에서 본 것이 직통의 예수 환상이 아니고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었다면, 에드워즈의 신앙의 건전성을 굳이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읽어보시고, 생각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선하고 진지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에드워즈의 부흥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사람입니다. 미국의 2차 대각성을 일으킨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 1792-1885)는 아담의 원죄의 영향도 부인하고, 우리의 죄 값을 배상하기 위해 예수님이 대신 피 흘리고 죽으셨다는 사실도 부정한 이단이었습니다. 그런데 피니와 같은 이단이 일으킨 부흥이 놀라운 성령의 부흥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사실을 알고 나서 모든 부흥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총신에서 웨일즈 부흥(The Welsh Rivival, 1904-05)에 대해 전혀 올바른 사실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웨일즈 부흥의 주동자 이반 로버츠(Evan Roberts, 1878-1951)가 성경 66권 계시의 완전성, 종결성, 충족성을 순식간에 돌파하여 직통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며 계시를 받았던 이단이었습니다. 웨일즈 부흥이 거짓 영의 사람을 통해 일어난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일어난 아주사 부흥(The Azusa Street Rivival, 1906)에 대해서도 총신에서 바르게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위대한 성령의 사람들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회복한 것이 아주사 부흥이었다고 배웠습니다. 총신의 그 어떤 교수도 아주사 부흥이 이단들에 의해 저질러진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말씀하신 분이 서철원 박사님이셨는데, 서 박사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 그 당시 독일의 신학자들이 이것(아주사 부흥)은 하늘에서 내려온 부흥이 아니고 땅에서 생겨난 부흥이다 라고 평가했습니다.”(서철원 박사)

그 때는 서철원 박사님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후 여러 자료들을 비교하고 연구하면서 아주사 부흥이 성령의 부흥이 아니고 이단들의 잔치였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아주사 거짓 부흥의 열매로 세계교회를 사탄적인 교회로 전락시키는 오순절운동-은사운동-빈야드운동-신사도운동이 탄생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사도행전 이후 온전한 부흥이 과연 있었을까?”

저는 이러한 고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희망과 가능성을 조나단 에드워즈에게서 발견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에드워즈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제가 다니는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에드워즈에 관하여 깊이 연구를 하신 아드리안 닐(Adriaan Neele) 교수님이 인도하시는 수업 Jonathan Edward Seminary에 참여하게 되어 에드워즈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왼쪽의 사람이 Adriaan Neele 교수(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수업시간)

저도 처음에는 기존의 출판물들이 보여주는 내용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에드워즈의 사상과 부흥을 이해하였습니다. <바른믿음>에 있는 저의 에드워즈에 대한 글들을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1734-35 동안 일어난 에드워즈 생애의 1차 부흥의 괴상한 현상들과 그때 은혜 받은 신자들에게 나타난 우울증과 자살 행렬을 알고 나서 참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1740-42년 동안 일어난 1차 대각성(The First Great Awakening) 기간에 일어난 무수한 입신, 실신, 몸의 마비, 몸의 진동, 비정상적인 공포와 울음과 웃음 현상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성령이 그런 일을 하신다면, 과연 성령과 악령의 차이는 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이 부흥이라면 그런 부흥은 영구히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에드워즈의 대표작 <신앙감정론>이 거짓된 부흥에 대해 좋은 말들을 많이 한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세계 교회역사의 대표적인 부흥이었던 1차 대각성 속에 그렇게도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참 이상했습니다. 좀 심한 말로 대각성 동안 에드워즈는 마귀의 도구가 되어 그런 거짓된 현상들을 옹호하였습니다. 그런 일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꾸짖고 막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에드워즈의 그런 모습은 저에게 매우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에드워즈가 자기 부인 사라에게서 벌어진 입신을 격하게 칭송하고, 그런 현상들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그 정체를 의심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용서받지 못할 성령훼방 죄에 해당하는 것처럼 말했던 에드워즈의 모습은 더욱 더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에드워즈의 신학과 부흥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을 하고, 강의하고, 책들을 펴내시는 분들은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이 위대한 작품이라는 사실만 이야기합니다. 그 시절에는 부흥이 벌어지면 늘 그랬으므로 에드워즈가 범한 그런 허물들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드워즈가 아니어도 우리는 삼위일체를 연구할 수 있고, 에드워즈가 아니어도 알미니안 사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66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에드워즈가 없었으면 삼위일체를 알 수 없고, 칼빈주의를 알 수 없고, 알미니안 사상을 물리칠 수 없는 것 같이 말하면서 에드워즈가 했던 마귀 짓을 무조건 덮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비록 실수라고 해도 그가 마귀가 일으킨 사악한 일들을 성령의 부흥이라고 주장하였고, 이제는 그것이 세계적인 대부흥의 전설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곧 마귀가 경배와 영광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덮고 넘어갈 일은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에드워즈 이야기를 통해 학위를 받고, 강의하고, 책을 내어 유명해진 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1737년에 에드워즈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입니다. 에드워즈에게 일어난 그 일이 과연 성령의 역사하심인지에 대해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에드워즈가 1740년경 기록한 자서전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에드워즈에게 이 일이 일어난 때는 1737년입니다. 1737년이면 에드워즈 교회와 그의 부흥의 영향을 받은 이웃 교회들의 신자들에게서 우울증과 자살 행렬이 일어나면서 1차 부흥(Connecticut Valley Rivival, 1734-35)이 이상하게 끝난 후입니다. 바로 그 해에 에드워즈 교회의 예배당이 무너져서 몇 사람이 다쳤고, 이후 재건축 과정에서 에드워즈 교인들이 심각하게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흥에 대한 미화된 이야기 <신실한 회심 이야기>가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서 출판되어 웨슬리 등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에드워즈가 숲에서 본 예수 환상

평소 에드워즈는 말을 타고 숲으로 가서 산책하면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 날에도 산책하면서 기도하고 묵상하기 위해 말을 타고 숲으로 갔습니다. 그날 에드워즈는 숲에서 특별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에드워즈가 자서전에 쓴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고 제가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번역해 보겠으니, 에드워즈의 원문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Once, as I rid out into the woods for my health, anno 1737”
(1737년 경 하루는 나의 건강을 위해 말을 타고 숲으로 들어갔었는데)

“and having lit from my horse in retired place, as my manner commonly has been to walk for divine contemplation and prayer; I had a view, that for me was extraordinary, of the glory of the Son of God”
(조용한 곳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평소에 하던 방식대로 묵상과 기도를 위해 걷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나에게 나타나는 특별한 환상을 보았다.)

“The person of Christ appeared ineffably excellent, with an excellency great enough to swallow up all thought and concept.”
(삼위일체의 그리스도의 위격(또는 인성)이 나에게 나타났는데, 그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광경이었고, 인간의 모든 사상과 사고를 초라하게 만드는 참으로 장엄한 모습이었다.)

“about an hour; which kept me, the bigger part of the time, in a flood tears, and weeping aloud.”
(그 환상은 약 한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눈물이 강을 이루는 가운데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에드워드 전문가이시고, 에드워즈 이야기로 명성과 돈과 학위도 얻으신 많은 교수님들과 출판업계 관계자님들께 질문 드립니다. 저도 에드워즈처럼 환상 가운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면서 엉엉 울어보는 은혜를 사모해도 될까요?

저는 지금까지 성경 66권으로 모든 특별계시와 특별계시를 내포하는 특별한 은사들과 현상들이 종결되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것에 위배되는 특별한 주장이나 경험을 말하는 모든 자들을 이단으로 여겼습니다. 아직까지 에드워즈처럼 특별계시를 경험하고 이단 시비에 걸리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에드워즈의 이 환상 체험 앞에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1차 대각성의 영웅 에드워즈는 이런 특별계시를 받을 수 있었으나, 지금 우리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이단에 해당하는 것인가요?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신 에드워즈에게는 성경 66권의 계시 외에 사적으로 그와 같은 특별계시를 더 허락하여 주셨던 것일까요? 원죄를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부정했던 이단 찰스 피니도 다음과 같은 특별계시 현상을 체험을 했습니다.

“찰스 피니는 3년 후인 1821년 10월 10일 화요일 마을 북쪽에 위치한 숲속에 들어가 정오를 넘길 때까지 기도하던 중 그의 생애의 ‘가장 깊은 영적인 환희’를 경험했다. 그날 퇴근 후 그곳을 다시 찾은 피니는 기도 중에 놀라운 체험을 했는데, 그는 이것이 ‘환상이 아니라 육체적(실재적) 현시’였다고 믿었다. ‘나는 강한 성령세례를 받았다 ... 전혀 예상치도 않았는데,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리라도는 꿈에도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느 누구한테서 그런 일에 대해 들은 기억이 없는데 ...(찰스 피니)’”

찰스 피니는 숲에서 기도하다 그리스도(또는 성령)가 실제로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피니는 그 체험을 강력한 성령세례라고 표현했고, 이 일이 있고 난 후 피니는 위대한 거짓 부흥운동가로 성장했습니다. 찰스 피니는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도 부정하는 이단이었으므로 그의 체험이 진리의 영의 체험일 수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에드워즈도 비슷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에드워즈는 구원론에서 위대한 칼빈주의자였으므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가요? 그에게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접 보여준 특별한 환상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이었을까요? 성경 66권으로 종결된 특별계시의 문이 에드워즈에게만 잠시 열렸다가 다시 닫혔던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에드워즈, 조용기, 변승우 같은 큰 부흥의 일꾼에게는 성경 66권으로 닫혀진 특별계시의 문을 잠시 열어주시는 것인가요?

특히 에드워즈의 성령신학에 대해 연구하신 교수님들에게 질문 드립니다. 지금 우리도 에드워즈와 같이 삼위일체의 제2의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환상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앞으로 그와 같은 환상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도 좋을까요?

어떤 분들은 에드워즈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더욱 더 에드워즈를 극찬합니다. 신학과 지성으로는 어스거틴, 칼빈에 필적하는 위대한 인물이고, 그리고 부흥과 성령체험에 있어서는 교회사의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더욱 더 위대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런데 만일 에드워즈가 본 환상이 거짓 영의 역사였다면, 그런 것을 보는 영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을 통해 이후에 나타난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바로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에드워즈 자신도 중시하였고, 지금 우리도 매우 중시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이 지금 중지되었기 때문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 

정이철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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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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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합니다 2018-11-11 04:02:11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슈의 근거가 되는 영어문장의 번역에 관심이 있어서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모쪼록 건전하고 유익한 토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I had a view, that for me was extraordinary, of the glory of the Son of God”라는 문장을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나에게 나타나는 특별한 환상을 보았다.”이라고 번역하셨습니다. 그런데 영어 표현에서 ‘had a view of~’라는 표현은 ‘환상’이라는 단어로 확정 지어서 번역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육신의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 곧 이해력으로 무엇을 보는 것, 다시 말해서 어떤 대상을 인지하고 인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번역을 위해서는 어떤 표현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의미 중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세밀하게 살펴보고 번역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을 올바르게 번역하기 위해서는 문맥을 잘 살펴서 에드워즈가 육체의 눈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런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비로소 ‘환상’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좋은 방법은 에드워즈가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라는 표현을 쓸 때 (다른 곳에서도 많이 썼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때 ‘본다’라는 동사가 육안으로 어떤 환상을 본다는 것인지, 아니면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더 현저하게 인식하게 된다는 의미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방법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라는 표현을 쓸 때 (설교자들은 흔히 성경의 표현을 배워서 쓸 때가 많습니다), 그 때 ‘본다’라는 동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확인하고 위의 문장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성경을 보면 육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해하고 확신하는 것에도 ‘본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구절은 고후 3장 1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장 18절을 읽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가시적인 환상으로 나타난 주의 영광을 육안으로 본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주의 영광을 본다’라는 표현을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 6절은 ‘보는 것’과 ‘아는 것’을 병치함으로써 ‘보는 것’이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임을 확실하게 설명합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에드워즈가 성경의 이런 표현을 차용해서 말한 것이라면 우리도 그렇게 이해를 해야겠지요.

    사족으로, “The person of Christ appeared”라는 문장을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가 나에게 나타났다.”라고 번역하셨는데요 순전히 번역의 차원에서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번역입니다. 이런 경우 ‘person’이라는 단어는 신학용어로 ‘위격’이라고 번역됩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할 때, 한 분이신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고 말하는데, 그 때 ‘위격’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영어로 하면 ‘person’입니다. 이 표현은 성부, 성자, 성령 각각 모두에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육체의 형상이나 가시적인 형상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모쪼록 건전하고 유익한 토론이기를 바랍니다.신고 | 삭제

    • 김리훈 2018-11-11 03:34:35

      좋은 의견이고 very controversial한 issue 입니다. 저도 집사 안수시 성령의 임재 하심을 체험했고 (저는 이 체험을 성령세례라 정의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모태신앙 가운데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녔지만 내가 정말로 에수님을 믿었는가에 대해서는 집사안수 전까지는 몰랐기 때문입니다), 어디선가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을 확실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가 제가 죽음의 문턱에 있었을 때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는 저에게말씀 하시길, “네가 4살 때에 뇌막염으로 죽을뻔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Jonathan Edwards의 말대로 회심은 사람에 따라 다양 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 재세례 사상에 대해서는 단연코 거부 합니다. 성령세례 받은 사람이 성령 더 달라고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세례 받지 못한 사람들이 성령의 임재 하심으로 나타나는 외적인 현상들은 사람들에 따라 다양하다고 봅니다. 만일 이러한 것을 부정한다면 그동안 수세기 동안 일어났던 성령의 대부흥의 역사들은 다 사탄의 역사였고 심지어 평양 대부흥의 역사까지 부인 하여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부흥운동을 주도 하였던 주역들 만큼 성령의 역사를 더 잘아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요 ? 마치 사도바울이 1세기 유대교를 모든 이 시대의 새관점학파들의 신학자들 보다 더 잘 아는것 처럼 말입니다. 물론 부흥운동의 주역은 성령님 자신이십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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