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찬양을 정말 좋아하는데 민족성이 가무(노래와 춤)를 좋아하는 문화적 배경으로 인하여 찬양사역자들이 많고 찬양 집회에 수많은 신자들이 참여하고 교역자 청빙에도 악기 사용과 찬양인도를 요구한다. 이러한 한국교회는 성가대를 조직해서 세우거나 찬양단을 조직하여 주일예배 시작 전에 찬양을 하여 분위기를 만들고 예배에서 성가대가 찬양을 하고 대형교회는 급여를 받고 악기를 연주하는 관현악단이 있다.

그리고 찬양 집회로 성장한 교회가 많아서 교회성장의 방법으로 찬양을 중요시하고 찬양사역자들은 예배자학교를 만들어 운영할 정도로 찬양을 좋아하는데, 문제는 개혁주의 교회들이 하는 찬양이 정말로 성경적이고 교회의 정통적인 방법으로 행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의 교회 안에서 들리는 찬양들이 너무나도 세상적인 음악 장르와 비복음적인 내용들이 넘쳐나는 비참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문제들이 있는가를 간단하게 보면, 대중가요적 음악을 사용하고 합합과 트로트(뽕짝)에 가사 내용만 기독교적 메시지로 사용하여 부르는 일을 행하는 자들을 초청하여 집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교회의 종교적 현상에 대해 생각해야 할 질문은 “찬양으로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답으로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너무나도 많은 이유는 ‘은혜의 수단’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결국은 잘못된 신앙으로 나아갈 위험성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르게 생각해 보면 찬양의 가사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다고 할 수 있지만 솔직히 가사로 은혜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음악의 리듬이나 선율에 의해서 심취되기에 요즘 찬양들은 세속적인 음악 장르에 대해서 수용성이 매우 강하여 신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찬양에서 악기로 드럼 사용에 비판적인 글을 작성해 올렸다가 비난을 받은 목사도 있었는데, 사실상 그 배경에는 현대교회들이 얼마나 교회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지를 보여준 안타까운 사건이다. 즉 교회의 찬양에서 사용되는 악기는 인간의 감성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악기(북, 징, 드럼)가 반드시 아니어야 하고 리듬이나 선율(가락, 멜로디)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내용으로 찬송가와 비슷한 찬양들로 반드시 ‘회중 찬송’에 유익한 악기로만 사용해야 하기에 “오르간과 피아노” 악기로만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실천신학자 비셔 교수(캐나다, 개혁교회 신학대학)의 ‘칼빈 전통에서의 교회 음악’에서 주장한다.

그러므로 악기 사용에 제한이 필요하여 서구의 개혁주의 교회들이 사용하는 오르간(오르간 선율을 사용할 수 있는 악기) 반주나 피아노 반주가 좋고 전자 악기들(전자음악)과 노래방과 비슷한 반주기 그리고 드럼이나 북 등은 사용하지 말고 칼뱅의 제안대로 ‘(번안된) 시편찬송가’를 사용하는 것이 개혁주의 예배의 특징이기에 좋다.

이렇게 해야 할 이유는 찬양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상 리듬이나 선율보다 가사 내용이기에 반드시 찬양의 가사가 신학적으로 바람직한지를 검증해야 하는데 노래라는 것이 부르는 사람은 곡이 마음에 들면 심취를 해서 반복해서 부르고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기도 하는 것을 영적인 문제로 보면 부르는 가사 내용이 성경적이지 않고 정통적이지 않는 신학적 내용이라면 부르는 신자에게는 분명하게 영적으로 악영향을 주기에 반드시 가사 내용이 중요하다고 존 맥아더는 ‘분별’에서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찬양곡들은 반드시 신학적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지금의 찬송가에는 가사 내용이 하나님 찬양과 전혀 무관한 곡으로 ‘가슴마다 파도친다(574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579장)’, ‘어둔밤 마음에 잠겨(582장)’ 등이 있다.

그리고 가사 내용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마귀들과 싸울지라(348장)’는 사탄의 여러 명칭 중 하나가 마귀이고 단수인데 복수로 마귀들은 잘못된 것이고 ‘하나님의 나팔 소리(180장)’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입장의 휴거 내용으로 잘못되었지만 무천년설의 입장인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516장)’라는 곡은 매우 성경적인 찬양으로 개혁주의 교회들이 자주 불어야 하는 찬송가이다.

그리고 작사자가 문제는 되는 ‘그 맑고 환한 밤중에(112장)’를 작사한 에드먼드 시어즈는 이단인 유니테리언 목사로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 동정녀 탄생 등을 믿지 않는 이단자이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109장)’을 작사한 천주교회 신부인 조셉 모르는 마을 풍경을 보고 자신의 섰던 시를 다시 작성해서 만든 가사인데 신학적 문제는 ‘자장가 형태의 가사’로 되어 있는 것(한글 가사로 “아기 잘도 잔다.”이지만 독어 원문은 “하늘 평화 속에 잘 자거라”로 전형적인 자장가 형태의 가사)으로 사실상 아기 예수님을 자게 하는 어머니를 중시하는 ‘성모 마리아 사상’으로 우리의 입장에서는 부르면 안 되는 곡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러한 곡들은 찬송가에서 삭제가 되어야 하고 심각한 문제는 복음성가들도 신학적으로 가사 내용이 검증이 되지 않는 곡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불신자들에게도 사랑받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철저하게 인본적 가사 내용으로 문제가 단순히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서 피조된 존재가 아닌 사실상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D.G.)을 드리기 위해서 피조된 존재로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찬양해야 한다는 핵심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사 43:21).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서 개혁주의 교회들은 찬양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즉 예배에서 ‘은혜의 수단’인 설교와 성례전(세례와 성찬)으로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한 경배와 감사의 행위 중 하나가 찬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잘못된 번안으로 ‘2인칭 관점(너, 네, 너희)’이 아니라 신앙고백적인 자세(사도신조처럼 “나는 믿는다.”)로 불러야 하므로 반드시 ‘1인칭 관점(나, 내, 우리)’으로 다시 바꿔 불러야 하는데 예를 들어 ‘너 시험을 당해(342장)’을 부를 때에 “너 시험을 당 해 죄 짓지말고”가 아니라 “나 시험을 당해”로 불러야 하고 더불어 번안을 할 때에 영어 ‘you’의 번역을 ‘당신’으로 하면 우리 문화에서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기에 ‘주님’이라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교회의 음악에서 성가대와 찬양단이 아니라 ‘회중 찬송’이 핵심이기에 사실상 수준과 자질이 안되는 신자들을 찬양자들로 세우는 것이 덕이 되지 못하므로 하지 말고 우선적으로 찬송가와 복음성가에서 바른 신학적 가사 내용을 가진 곡들을 선별해 사용하여 회중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양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혁주의 교회들은 목회에서 찬양 사역이나 집회가 아니라 ‘은혜의 수단’인 설교와 성례전의 중요성을 바르게 가르쳐 알게 하며 행하고 장로교회에 음악목사라는 비개혁주의적 제도를 없애야 한다. 즉 목사는 음악 수준도 필요하지만 설교와 성례전을 집례하는 ‘말씀의 사역자(V.D.M.)’가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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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옥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개혁신학연구원, Knox Theological Seminary(D.Min.), Grace Theological Seminary(D.Miss.Pro.)에서 공부하였고, <성찬식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등 6권의 저서와 1권의 공저를 출판하였다. 전, 개신대학원대학교 강사였고, 현재는 경북 영주의 바른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바른성경아카데미(RBA) 원장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을 위해 실천하려고 연구하는 실천신학자이고, 또한 장례지도사로서 지역 사회를 섬기고 있다. potentia-dei@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