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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Mc에서 적토마를 타고 달리며 언월도를 연습했습니다

기사승인 2019.05.18  07: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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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독교강요』 4권 14장에 와 있습니다. 끝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네요. 저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제가 하는 연구의 주제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 자주 실감합니다. 지난 해 부터 『기독교강요』를 반드시 정독하여 요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에드워즈의 신비주의, 칭의신학, 성령신학의 문제를 비판할 때, 정통 개혁신학자 칼빈이라는 칼로 에드워즈를 쳐야 승부가 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에드워즈의 신비주의(이단성)에게 깊이 미혹되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에드워즈를 숭배하는 마음으로 그에 관하여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대각성에서 나타났던 괴이하고 신비적인 현상들을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더 깊이 알고 나니, 에드워즈는 매우 경건한 사람으로 포장된 꼬리가 아홉 정도 되는 18세기 뉴잉글랜드의 최고의 여우(이단)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여우를 어떻게 잡아야 하나?”

역시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답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을 완성한 정통 개혁신학자 칼빈의 신학으로 에드워즈를 해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싶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기독교강요』를 정식으로 구입하여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요약본 하나를 얻어서 보았으나, 자세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그나마 그것도 잃어버렸습니다.
 

   

“어떻게 그 비싼 <기독교강요>를 사서 읽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몇 달이 흘러갔습니다. 어떤 분과 대화하다 이러이러한 목적으로 『기독교강요』를 읽어야 하겠다고 말했는데, 그 분이 『기독교강요』 파일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그대로 출력하면 너무 페이지가 많으므로 줄 간격, 글자 간격을 조정하여 페이지 수를 줄였습니다. 그리고 양면으로 출력하고 구멍을 꿇어 바인더에 묶었습니다. 세상에 하나 뿐인  『기독교강요』가 탄생했습니다.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중요한 내용들을 키워드로 만들어 요약했습니다. Ctrl + F를 이용하여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면, 곧 바로 관련된 정보들이 나오게 되었으므로, 『기독교강요』에 대해서는 이제 어느 정도 되었다 싶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로 예수를 치는 교묘한 이단사상인 ‘능동적 순종’의 교리의 허구성을 드러내는데 『기독교강요』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회중파 청교도의 신학이 처음부터 칼빈의 신학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을 외치는 데에도 『기독교강요』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럴 때 『기독교강요』가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 우연일까요? 절대로 우연이 아닙니다. 저를 쓰시는 분이 싸워야 할 대적을 지시하시고, 싸우는데 필요한 무기도 공급하십니다. 그 동안 이런 일들을 수 없이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지난 해 서철원 박사님의 『교의신학전집』이 나왔고, 그것이 저에게 온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로 예수를 잡는 능동순종과 싸움이 시작되면서 서 박사님의 『교의신학전집』도 힘이 되었고, 앞으로 진리를 수호하는 싸움 때마다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서 박사님의 『교의신학전집』을 정독하며 정리하게 된 계기는 어떤 사람이 댓글에서 서 박사님이 새로 내신 책에서 능동순종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했다면서 ‘합동에서 떠나야 할 인물’이라고 조롱하는 말을 본 것입니다. 그것이 서 박사님의 『교의신학전집』을 정독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 박사님의 『교의신학전집』을 읽기 전에도 예수께서 율법을 지켜 하나님 백성 되는데 필요한 ‘의’(권리와 자격)를 얻어 우리에게 전가했다는 사상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저를 이단이라고 수군거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진짜 이단들이 진짜 정통을 보고 이단이라고 수군거리는 것을 보니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예수로 예수를 잡는 이단적 율법순종의 의(능동순종의 의) 교리의 문제를 지금처럼 정확하게 잘 파악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이전부터 익힌 정통 개혁신학의 ‘틀’과 ‘감’으로 예수께서 율법순종으로 의를 얻어 전가했다는 주장이 비성경적인 사변이라 느끼는 정도였습니다. 서 박사님의 책을 정독하면서 이 문제뿐 아니라 많든 신학의 주제들에 대해 날선 이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수 백 년 전에 나온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지 난 해에 나온 서철원 박사님의『교의신학전집』은 저에게 관운장이 얻은 적토마와 언월도 같았습니다. 매일 맥도날드에 앉아서 적토마를 타고 수 천리를 달리면서 언월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연습을 했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벧전 4:11)

아무도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해 주시는 은혜가 우리에게는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귀한 일을 맡기시고, 그 일을 감당하도록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위한 싸움을 시킬 때에 능히 싸워 이기도록 좋은 무기도 함께 주십시오. 어찌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을 위해 싸운다고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싸울 곳으로 인도하시고, 이길 수 있는 비결을 함께 주십니다.

당신에게는 적토마와 언월도가 필요없습니까? 

정이철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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