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으로 가십시오 (2)

 

총신에 아담의 중립적 창조를 믿는 교수들이 있다는 사실은 안 될일입니다. 아담이 중립적으로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은 기독교의 창조 신학을 성경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심각한 일 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거짓 이론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1) 아담은 죄를 범하지 않아도 얼마 후에 죽을 사람으로 창조되었다.

2) 아담은 스스로 노력하여 생명을 얻을 자격을 얻기 위한 시험 기간 안에서 창조되었다.

3) 아담과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분이었다.

4)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범죄로 죽음이 왔다는 성경 말씀은 거짓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

기독교의 복음은 아담의 상태와 타락에 대한 바른 설명과 이해로부터 전개됩니다. 사단의 큰 작품들은 모두 아담의 처음 상태와 타락의 내용을 왜곡함으로 생산되었습니다. 아담의 중립적 창조론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내용을 바꾸는 큰 사단의 작품입니다. 아담의 중립적 창조론은 펠라기우스와 그의 신학에다 뿌리를 둔 신학들이 한결 같이 주장했던 것입니다.
 

1. 펠라기우스 신학의 아담 중립적 창조론

“펠라기우스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믿었습니다. 1) 하나님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존재로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담은 자신이 선하게 행하든지 악하게 행하든지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아담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아담은 선과 악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 펠라기우스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하셨고, ‘죽음’은 단순히 창조의 한 부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달리 말하면, 펠라기우스는 죽음이 죄의 삯이 아니라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Bouwman 2016, 44-45).
 

2. 반 펠라기우스 신학의 아담 중립적 창조론

반 펠라기우스주의는 다음과 같이 입장을 정하였습니다. 1)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 않고 병들어 있습니다. 병든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죄에 빠진 사람의 능력을 제한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타락으로 인해 연약합니다. 2) ...(중략) 반펠라기우스주의는 구원이 하나님과 인간 양자의 노력이 결합하여 주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반펠라기우스주의에 따르면, ‘구원=하나님의 은혜+인간이 은혜를 받아들임’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협력하기로 결정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일 때만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Bouwman 2016, 49).
 

3. 소시니우스 신학의 아담 중립적 창조론

소시니우스(Socinius)라는 사람은 어거스틴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담이 중립적으로 창조되었고, 아담이 범죄했을 때 오직 아담만 그 죄에 영향을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중립적으로 태어났고 선악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지난 약 1000년 동안 교회가 반대해 온 펠라기우스주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Bouwman 2016, 53).
 

4. 알미니안 신학의 아담 중립적 창조론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타락 이전의 사람은 칼빈주의자들이 사람(아담)이 가졌다고 주장한 것들을 다 가진 성숙한 피조물이 아니었다고 믿었습니다. 오히려 사람은 무흠한 아이 같으면 더 성숙할 가능성이 있는 그런 존재라고 아르미니우스주의자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아담)은 지식을 증가시키고 거룩함과 의를 얻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지 이런 것들을 창조 시에 부여받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담은 의로운 상태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 아니며 오히려 무흠한 상태로 지음받은 피조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담은 선과 악의 중간 상태에 있었고 중립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Pronk 2002, 219).

야콥 아르미니우스는 특별히 개혁교회들 가운데서 다시 반펠라기우스를 부활시키는 책임을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1618-1619년의 (도르트) 총회에서 종교개혁 교회는 본질적으로 다시 한번 모든 면에서 반 펠라기우스주의를 다루었습니다” (Bouwman 2016, 53-54).
 

아담이 중립적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신학의 뿌리는 펠라기우스입니다. 아담이 중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 신학은 종교개혁과 칼빈 이전에는 오직 이단들만의 신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칼빈 이후에 아담 중립적 창조론은 종교개혁 교회의 신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칼빈 이후의 신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중세 로마교회에서 번성했던 스콜라주의가 다시 부활하여 개신교 스콜라주의를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선한 행위에 관한 로마교회의 스콜라주의 학자들의 가르침은 결국 펠라기우스의 가르침과 같아졌다고 말했습니다.

“The schools have gone continually from bad to worse until, in headlong ruin, they have plunged into a sort of Pelagianism.” (Insititutes, 3.11.15). (“스콜라 학파들은 점점 더 타락해서 드디어 파멸에 빠지게 되었고 일종의 펠라기우스주의로 전락하였다.”

로마교회의 스콜라주의 학자들이 사실상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었다고 칼빈은 말했습니다. 그런데 칼빈 이후에 스콜라주의는 개신교 신학과 합을 이루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담에 대해 펠라기우스와 같은 내용을 믿고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5. 웨신(WCF)의 아담 중립적 창조론

결국 펠라기우스 신학의 아담 중립적 창조론은 웨신(WCF) 19:1 속에 버젓하게 기록되고 말았습니다.

“God gave to Adam a law, as a covenant of works, by which he bound him and all his posterity to personal, entire, exact, and perpetual obedience, promising life upon the fulfillment of it, and threatening death upon the breach of it, and God gave him with power and the ability to keep it.” (WCF 19:1).

(하나님은 아담에게 행위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었고,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개인적이고, 완전하고, 정확하고, 그리고 영속적인 순종의 의무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 의무의 성취에 근거하여 생명이 약속되었고, 위반하면 죽음에 경고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의무를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주었습니다.)

태초의 아담에 대해 WCF 19:1항이 기술하는 내용은 펠라기우스, 반 펠라기우스, 소시니우스, 알미니우수가 주장했던 아담 중립적 창조론입니다. 아담이 자기 생명을 위한 노력으로 율법준수 공덕을 쌓으면 하나님이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실패하면 죽음이 그의 일부로 창조된 그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죽어야 했다는 의미입니다. 아담이 중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전제하는 말입니다. 

대체 왜 청교도들이 만든 웨신(WCF) 속에 펠라기안 신학의 부활인 알미니우스 신학의 아담 중립적 창조론이 기술되어 있을까요? 제임스 패커가 그 이유를 잘 파악하였습니다. 패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Arminianism emerged in Holland, but not as an isolated phenomenon; similar reactionary theologies appeared at about the same time in England, as we shall see, and in German Lutheranism." (Packer 2018, 5).

(알미니안주의는 화란에서 일어났지만, 그것은 독립된 현상이 아니었다. 동시에 비슷한 신학이 잉글랜드와 독일 루터란주의에서 비슷한 내용의 신학이 나타났다.)


요약하겠습니다. 아담 중립적 창조론 이단 사상을 믿으면서 모든 것을 중세의 청교도 성현들이 말씀과 문서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중세 청교도 성현들의 말과 문서를 100% 진리로 믿는 것은 무지하다기 보다는 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히 성경 위에 청교도 성현들의 말과 문서들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합신으로 가면 크게 환영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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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ker, James. 2019. Arminianisms. https://www.onthewing.org/user/Arm_Arminianisms%20-%20Packer.pdf.

Pronk, Cornelis N. 1999. Expository Sermon on the Canon of Dort. Translated by Jun-Ho Hwang. Seoul: The People of The Book Publications.

Asselt Wilem J., Piezier Theo J., Rouwendal Pieter L., Wisse Maarieen. 1998. Introduction to reformed Scholasticism. Translated by Byung-Soo Han. Seoul: Revival and Reformation.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7. translated by David Snoke. Pittsburgh: City Reformed Presbyterian Church.

https://www.cityreformed.org/uploads/9/8/8/6/98869954/wcf_in_modern_english.pdf

Bouwman, Clarence. 1998. Notes on the Canons of Dort. Armadale: The League of the Free Reformed Women’s Bible Study.

Calvin, John. 1998.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vol 3. Edited by John T. McNeill. Translated by Ford L. Battles. Albany: Books for The Ages. https://media.sabda.org/alkitab-7/LIBRARY/CALVIN/CAL_BAT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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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